주역이란 주나라 시대의 역으로,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 심오한 철학서이다. 공자님께서 책을 묶은 소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만큼 애독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한 주역은 이진법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주역의 기본 단위인 효(爻)에는 양(―)과 음()이 있는데, 이것은 2진법에 1과 0에 해당한다. 0을 나타내는 음()은 양(―)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둔 모양인데, 여기에는 비어있다는 0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주역에는 6개의 효(爻)를 조합하여 만든 64개의 괘(卦)가 있다. 각 효에는 양(―)과 음(), 2가지가 올 수 있으므로 6개의 효를 조합하는 방법은 2를 6번 곱한 64가지가 된다.
서양에서 이진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이다. 중국에 선교사로 가있던 라이프니츠의 친구는 주역에 나오는 도해를 라이프니츠에게 보내주었다. 여기에는 이진법의 원리에 따른 64개의 궤가 원과 정사각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도해를 받은 라이프니츠는 이미 오래전 동양에 이진법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동양 수학을 극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에도 이런 생각이 들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태극기의 네 귀퉁이에는 건(하늘), 곤(땅), 감(달), 이(해), 네 개의 괘가 그려져 있다. 고종황제가 처음 만든 태극기에는 3개의 효를 배열하여 만들 수 있는 경우는 모두 8가지로, 초기의 태극기에는 8괘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양(―)과 음()에 각각 1과 0을 대응시키면 8괘를 2진법의 수로 표현할 수 있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괘로 이루어져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 괘에는 위에 말한 하나의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건괘는 하늘뿐 아니라 아버지를 상징하기도 하고, 동물 중에서는 말의 이미지와 연관을 맺기도 한다. 주역의 64괘 384효는 우주 만상의 변화 원리를 알리는 부호이고, 64괘는 기본 8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4상을 낳고, 4상이 8괘를 낳는다하여 기본 8괘가 생성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양의는 음과 양을 가리키고, 사상은 음양이 분화하여 이루어지는 노음, 노양, 소음, 소양 넷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주역이 설명하는 천지 만물의 생성 도식이 되고 우주 진화론의 기본 골격이 된다.
이와 같은 고대 동양 철학의 산물인 주역을 구성하는 원리인 이진법이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최첨단 기계인 컴퓨터의 계산 원리로 부활한 것을 보면서, 비록 중국의 수학이기는 하지만 동양 수학의 저력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전북대 수리통계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