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용이 깃든 나무
[삶의 자리]용이 깃든 나무
  • <일출암 상원 석인돈여>
  • 승인 2004.09.10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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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사는 그곳이

 메마른 나무라네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애착하지 않는 자

 그는 부처님이 함께 하네  

  고목장룡(枯木藏龍)이라고 한다. 마른나무에 용이 깃든다는 것이 어떤 고사(古事)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고봉화상은 이렇게 자신이 시를 지어서 우리가 그의 시 그대로 지식을 함양하여야 하는 신세가 되어야 하겠금 만들고 있다. 나에게서는 그런 것이 통하질 않는다. 그것은 진리는 나무가 말라야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푸른 나무에도 진리는 존재한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모두에게 청정한 불성이 있는 것처럼 푸른 나무나 마른나무에 모두 용(龍)이 깃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스승들이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여 혼돈의 세계로 후인들을 인도하는 것은 뒷사람들을 가르침에 그 경지를 시험하기도 하고 또는 자신의 경지를 예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에서 걸리지 않는 모습을 가져야 하는 수행자의 본분보다도 더 중요한 것, 깨달음의 말을 말한다. 수행자에게 가 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이 세상에 애착이 없는 신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그와 같이 살지 않는데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즘도 조계종과 태고종이 대립에 있다고 한다.

 스스로 불교적 학식이 부족한지 아니면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이 재산싸움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성품인지가 구분이 되질 않는지, 그것도 아니면 직위가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불교 정화운동 당시 성철스님은 자신의 수행이 참다운 정화라 하여 정화운동에 동의 하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담스님은 사찰이 결혼하지 않은 스님들이 사는 곳으로 대처한 스님들이 사찰을 거주처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처첩을 거느린 수행자가 가야할 길은 어디이며 비구승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대승불교에는 제가 불자의 수행력이 독신 수행자보다 더욱더 뛰어난 사람도 있었으나 근간에는 비구에서도 눈 밝은이 사막에 난 풀 같고 보살승에서 또한 그러하다. 제가한 사람은 자식을 생산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촌락에 머물며 자신의 생계를 유지 하여야 할 것이다. 조계종이든 태고종이든 왜 따져야 하는지, 부파불교 시대처럼 많은 종단이 난무하는 때에는 그 사람들의 수행하는 모습에 따라 사찰에 거주할 자질이 있고 없고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다투지 아니하고 일을 처리함이 수행자의 모습이 아닐까한다.

 각설하고 ‘고목장용하니 뇌동필경이라 경자시소하며 불경자시다라’ 천둥이 치면 반드시 놀랄 것이다. 그러나 놀라는 사람 오히려 적고 놀라지 아니하는 사람이 많더라 하였으니 독자는 어떻게 보는고?

  그것이 있으면

  그는 놀라지 못하나니

  이것에 그가 깨우치지 못하고

  이로 본분을 삼는 고로

  삼계를 여이지 못하나니

  벗어 버리려면

  크게 놀랄지니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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