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다른 개인이나 집단간의 협력을 실천적으로 획득하기는 쉽지 않다. ‘협력’이 ‘실질’을 전제로 의미가 살기 때문에 실천이 따르지 않는 협력이란 무용지물에 불과하며 어떤 상호관계가 그런 실천력을 담보로 하지 않을 때 제대로 성립되기 어려움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이를테면 남.북이나 한.중, 한.일 사이에 실현될 수 없는 협력 관계가 약속된다면 이것은 협력이라 할 수 없다. 남.북 사이에 남쪽의 평화통일과 북쪽의 적화통일을 둘러싸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할 때 그게 과연 가능할 것인지가 바로 이런 종류의 범 주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곧 위장(僞裝) 협력이다. 쌍방간에 협력이 발동되기 위해 취해져야 할 나름의 선행요건 부재도 마찬가지다. 가령 고구려사에 대해 남.북이 공동 대처하기로 합의한 일이다. 이는 구태어 합의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과제이지만 협력해야 할 경우북한이 구체적으로 취할 내용을 내놔야 한다. 간도 땅 반환을 중국과 즉시 담판한다든지, 만주의 문화재 복속을 중국에 요구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대포라도 걸고 중국에 엄정 경고한다든지 등 그야말로 고구려 기상으로다.
간도와 고구려사가 이 지경이 된 건 지난 60년 가까운 중국 영향하에서 말 한 마디 못한 북한 입지에 기인한 것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새삼 고구려사에 관해 남.북 협력을 하겠다는 건 역시 위장에 가깝다. 자칫 면피용으로 북한의 책임만 면제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이 시점에 누구의 책임을 따질래서가 아니다. 중국이 북한에 성내면 슬그머니 그나마 꼬리를 내리지 않을지 걱정되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