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김성한 감독
기아 김성한 감독
  • 승인 2004.10.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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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고교야구가 스포츠 종목에서 인기의 톱을 차지할 때가 있었다. 아마 그 무렵 군사문화에 실물이 난 대부분의 국민들이 스포츠에 마음의 도피처를 둔 여파였을 것이다. 야구가 구한말 야소교 선교사들에 의해 서울 종로 YMCA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죽 명맥이 이어지긴 했지만이 무렵 고교야구처럼 전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엮은 때는 없었다. 그 열기가 너무나도 대단하여 어디를 가나 고교야구가 화제였다.

 ▼그 전성시대 군산상고 야구가 전국의 히로인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최관수라는 감독의 명조련이었던지 혹은 선수들이 죽 골라진 탓인지 군산상고 야구는 다른 고교야구의 추종을 불허할만치 발군의 실력으로 전국 고교야구를 압도했다. 아마도 최관수감독의 명조련이 고른 선수들의 기량이 알파한 결과였을 것이다. 전국을 여러번 제패한 군산상고 야구 덕택으로 전북사람들 어깨가 으쓱할 정도였다.

 ▼그때 명성을 떨친 선수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홈런을 펄펄 날렸던 김봉연. 퍼스트 러너에 일번 타자로 곧잘 ?안타를 잘 치던 김일권, 또한 큰 체격에 장타를 잘 치던 외야수의 김일환, 그리고 야구의 재주꾼이라는 별명을 달고 때론 투수기능까지 거침없이 해내는 안타제조기 김성한 선수. 이밖에도 기억해 내기로 하면 몇명의 선수가 더 있을 것이다. 아무튼 대단한 이름의 선수들이었다.

 ▼야구는 투 아웃 이후이고 9회말부터라는 말같이 군산상고 야구는 투 아웃 이후나 9회말에 가서 번번히 판세를 뒤집었다. 한점차의 9회말 투 아웃카운트의 피말리는 일전에서 군산상고는 극적인 역전타를 날려 스릴 만점의 보를 울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 무렵의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 아닌 별명으로 전국 고교야구를 석권했다.

 ▼그때 군산상고 야구의 히로인이었던 김성한 프로야구 기아 총감독이 모교 후배들의 야구 양성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나의 오늘을 있게 키워준 모교에 보답하기 위해서”가 김 감독의 변. 이로써 왕년의 명성을 뒤로 침체의 길을 걷던 군산상고 야구가 다시 부활하여 중흥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왕년 최관수라는 명감독이 있었기에 군산상고 야구가 그 전성기를 맞았듯이 김성한 감독에 의한 제2 전성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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