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정체성
밥의 정체성
  • 승인 2004.10.24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이래봐야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비싼)밥 먹고 할 일이 그렇게 없다더냐’, ‘밥만 많이 주면 군대 말뚝이라도 박겠다’. 밥의 일상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끼니를 때우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일은 곧 밥을 먹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밥은 공교롭게도 혼자 삼켜지지 않는다.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 보조재인 (반)찬이 필수적으로 따라간다. 하다못해 말아 먹을 물반찬이라도 있어야 하고, 소금이나 간장, 된장이 있으면 먹는 맛은 훨씬 윤택해진다. 김치, 나물, 국같은 2단계 반찬까지 가면 제법 어우러진 밥상이다.

 모순이라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풍부한 식단이 챙겨져도 밥은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이고 중심이고 목적이다. 다른 것을 아무리 맛있고 배부르게 든다 해도 그것은 반찬일 뿐이지 밥을 대신하지 못한다. 참으로 전통적인, 그러나 외곬의 식사관에 틀림없다.

 채소는 맛내기나 곁들임 부분으로, 생선이나 육류는 그것대로, 국은 국대로 밥과 동등한 선상의 평등한 요리 종류가 될 수 있을진대 구태어 ‘밥’이라는 왕의 시녀로 하락시킬 필요가 있을지 하는 의문에서다. 한 수저 밥이라도 반드시 먹기 위해 수행되는 전단계 혹은 병행단계의 요리 순례가 어쩐지 불평등하고 부자연스럽다.

 요리만 고루 들고 밥을 안 먹으면 ‘반찬만 먹고 밥을 안 먹다니 말이 되느냐’는 타박이 돌아온다. 흥부가 한떼의 자녀들을 데리고 놀부네 부엌으로 다가가자 깜짝 놀란 놀부 마누라가 주걱으로 흥부 볼테기를 친다. 볼테기에 붙은 밥알을 떼어먹는 흥부의 행복에서 밥은 신이다.

 제기랄, 차라리 생호박이라도 깨 먹고 물에 가서 개구리라도 잡아먹지. 역대의 가난은 ‘밥’때문이다. ‘밥의 부족’이 아니라 밥만 찾는 데 있었다. ‘밥을 죽여라 밥을 없애라’. 식량안보 어쩌구 저쩌구도 알고보면 밥에 문제가 있다. 밥을 우리 식단에서 내리자. ‘민족 정체성’이라고 법의 개정이나, 헌법소원이 있을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