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문학관 있는그대로의 뜻
미당 시문학관 있는그대로의 뜻
  • 승인 2004.1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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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이 서거했을 때는 마침 친일행위자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일기 시작한 김대중 정권기였다. 그러한 정치적 분위기에 영향받은 탓인지 미당 본래의 명성만큼 큰 반향을 얻지 못한 건 우리 문학, 우리 시, 우리 예술계, 나아가 국민적 정서의 그림자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굴종한 시대인 일제강점기에 가장 아름다운 우리 말로 우리 고유의 시연을 엮어 낸 자체로만도 민족정기를 살린 셈이 된 시인으로서의 위대함은 새삼 논리나 설명으로 대체할 바가 아니다. 반면에 바로 그 굴종의 시대에 그가 편 냄새나는 행적도 결코 지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미당이 태어난 고창에 미당시문학관을 지을 때도 그런 양면의 기록이 적절히 고려되고 무리없이 반영되어 있다. 시문학관이 미당 개인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은 가리는 목적으로 의도되고 조성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부분에 편향이 있다면 그러한 것을 한사코 막을 미당의 영혼일 것이다.

 국민시인이란, 세대간 차이 없이 애송되는 주옥같은 시를 이 세상에 남겨 놓은 것만으로 그를 예찬하고, 그 맑은 시의 향취에 젖어 보는 것으로 건강한 생명의 욕구가 갈증을 해소하고, 그러한 연상과 기억과 마주침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영원과 영혼의 시인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러한 시인이 얼마나 긴 세월의 산고를 지나 드문드문 태어나는지는 자연 아니면 신만이 간직하는 비밀이다. 우리의 시대에 그것도 우리의 곁 질마재에서 낳고 거기에 영원한 안거를 마련하여 영감과 추억으로 항상 시를 노래하게 하고 가르쳐 주는 시선을 둔 지복이 어디인가.

 김춘수 시인은 미당의 서거시 ‘시인은 시로 말한다’고 했다. 시 이외의 논란이 자칫 시인의 면모를 혼란스럽게 할 염려에서일 것이다. 미당시문학관의 관비 투입을 두고 생기는 실랑이들은 그런 뜻으로 함축되고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질마재를 덮은 국화꽃에 취한 님과 님들의 속삭임과 입김들이 그런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영웅교향곡의 이름은 바뀌어도 베토벤의 벅찬 감동의 순간을 어떻게 지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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