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내가 사랑한 것은 흙이었다!
이팔청춘-내가 사랑한 것은 흙이었다!
  • 강영희기자
  • 승인 2004.11.19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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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능력시험 치르기를 거부하고 대학가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심각한 문제아 아닐까? 게다가 그는 전북에서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전주고 3년 재학생이다.

 이제 더이상 이팔청춘 ‘준영’군에게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사랑한 것은 오로지 흙과 가족이다.

 어린 시절부터 흙을 만지며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김준영군이 첫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세탁소→옆집→옆집에 작업실 ‘미나리’를 둔 탓에 그 위치가 이번 전시의 주제가 돼 버렸다.

 그는 19일 전북예술회관 1층 2실(김준영군이 다방옆이라고 이름을 붙였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25일까지 이어지는데 김군은 전북예술회관 개관 이래 최연소 개인전 참가자다.

 다소 특별한 학생이지만 준영군 역시 여느 학생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현재 입시제도와 어른들의 생각에 불만을 갖곤 한다.

 주말마다 새까맣게 더러워진 교복을 빠느라 부모님과 목욕탕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가 하면 아침마다 더 잠을 자고픈 열망에 젖어 어머니의 잔소리 세례를 받기도 한다.

 다만 준영군이 같은 또래 친구들과 다른 것은 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적응하지 않고 그것의 문제를 꿰뚫으면서 극복했다는 점이다.

 그 덕에 최종학력 중졸에 영농후계자가 될 뻔도 했지만 준영군은 그 때의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흙을 사랑하는 이팔청춘이 됐다.

 준영군이 이처럼 독특한 도예가가 된데는 아버지 김충순씨의 영향이 크다. 서양화가로서 독특한 화풍을 쌓아놓은 김 작가의 몽둥이 학대, 쓴소리, 아낌없는 배려가 더해지면서 아들 김준영군은 이제 ‘젊은 작가’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내가 사랑한 것은 흙이었습니다. 좀더 폼나게 이야기하자면 나보다 먼저 흙 작업을 해왔던 모든 작가들이 앞서서 흙에 대한 예찬을 해왔던 것처럼 말이죠. 해마다 봄부터 흙과 더불어 신성한 노동으로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아저씨들의 삶의 원천이 그 흙에 있듯 변치 않는 흙을 향해서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김준영군이 이번에 선보이는 도자기 작품은 총 300여점. 흙을 사랑한 소년의 꾸미지 않은 마음이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86년 파리에서 태어나 송북초등학교와 전주중과 양지중을 거쳐 산외중을 졸업한 김준영군은 현재 전주고 3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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