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敗者)의 용기(勇氣)
패자(敗者)의 용기(勇氣)
  • 승인 2004.11.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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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결과가 며칠 걸릴 것처럼 보도되더니 하루밤 사이에 패자가 깨끗이 승복하면서 “미국 선거에 패자란 없습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우리는 모두 미국인일 뿐입니다. 이제는 국가를 위해 공동의 목적을 찾도록, 후회나 분노 증오를 갖지 말고 협력하며 동참해야 합니다. 나는 당파적인 분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내 몫을 다하겠습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나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과연 미국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부러움도 느꼈다. 우리는 흔히 선진국이라면 부강한 국가를 떠올리나, 경제력과 군사력은 선진국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케리 후보가 오하이오주의 개표 절차에 연연하지 않고 신속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하면서 미국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의 대열에 동참을 당부한 점은 선진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선거를 돌아보면 경쟁은 잘하는데 협력은 약하며 진정한 승복 문화도 없어 항상 결과의 후유증이 심각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은 한번 나섰다가 패배하면 대부분 재도전을 하지 않는 ‘아름다운 패자’와 ‘우아한 은퇴’가 일반화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재수, 3수가 필수이고 심지어 선출된 대통령도 인정하지 않으려 드니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바라는 도약은 이루어지지 않고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선거제도 특성상 패자도 일종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지난 번 충남 교육감 선거에서 1차 투표결과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가운데 2위를 한 K후보가 2차 투표에서 3위를 한 L후보에게 자신을 지지해주는 조건으로 천안?아산?연기 등 3개 지역의 인사권 위임을 비롯해서 차기 선거의 적극지원 등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각서를 써 주고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본전(?)을 뽑기 위해 교육장, 교장 심지어는 교사 전보까지 매관매직이 끊이지 않고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더럽고 추악한 거래에 교직자로서 심히 부끄럽고,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도는 지난 7월의 교육감 선거에서 1차 투표에 2위를 차지한 후보가 2차 투표에서는 3위로 탈락한 M후보가 유일하게 1위를 한 군산 익산 지역에서 경쟁자보다 567표가 더 많은 1,250표를 얻어 당선의 디딤돌이 되었다.

M후보가 2차 투표에 들어가기 전 엄정 중립을 공표 했기 때문에 이러한 표의 성향이 나타났어도 우리는 믿어야겠지만 과연 모두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믿거나 말거나’는 자유에 맡기겠지만 문제는 같이 교육 수장(首長)을 경선 했던 사람이 패배 후에도 그 경쟁자 밑에서 오비이락의 사시(斜視)적 오해를 무릅쓰고 과(課) 소관 업무를 총괄하는 현직에 남아 있는 부담을 당선자는 여론에서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아무튼 삼척동자(三尺童子)에게 물어봐도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비록 전혀 괘념(掛念)치 않을지라도 우리 속담에 ‘빈 총(銃)도 맞지 않음만 못하다’는 말과 같이 떳떳한 반열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으려면 원인 제공을 해소해야 한다.

어느 기업 총수가 후임자리를 인계하면서 후임의 소신 경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하 임원들도 영향력 있던 요직에서 한직으로 물러나도록 했다는 일화는 귀감이 된다.

안 도<호남제일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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