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의 역사
커닝의 역사
  • 승인 2004.11.3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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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화 된 수능시험부정 숫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먼 옛날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험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먼 옛날 우리전통사회의 선조들도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는 있었다.시험장에서 커닝행위를 하는 서생을 새끼벌이라고 불렀다.자리에 앉아서 이쪽저쪽 시험지를 훔쳐보려니까 자연 목을 길게 늘여빼고 옆을 보는 게 마치 새끼벌같다고 해서 생긴이름이다

▲또 커닝을 속된말로 꼭지눈이라고도 했다.즉 눈이 뒤에 달려있다라는 뜻인데 스무번이나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범진이라는 서생이 "스무번이나 과거시험에 떨어지고 거울을 보니 얼굴에 눈이 하나만 있고 한눈은 간곳이없어 집안사람불러모아놓고 없어진 눈을 온통 뒤져가며 찾아보니 시험장에서 돌고돌아 뒤꼭지에 붙어있더라고 울며 읊은 중국의 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꼭지눈이다.

▲옆사람의 시험지를 몰래 훔쳐보는 커닝을 눈을 돌려서 본다는 뜻으로 고반(顧盼)이라고 한다.만일 옆사람의 답안지를 훔쳐보다 적발되면 고반이라는 도장을 찍어 점수를 매길때 감점을 준다. 이 행위가 반복이되면 현장에서 즉각 퇴장당한다.심지어는 시험감독까지 문책당하는것은 물론이요 유배형까지 내려진다고 한다.

▲ 1858년청나라에서 과거시험 부정사건이 일어났는데 죽음의 처벌을 받고 있다.당시 포광이라는 감독관이 중앙정부의 장관청탁을 받고 수험생의 부정을 눈감아줘 급제를 한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결국 감독관은 물론 총감독관의 책임을 맡았던 장관까지도 사형당한다. 옛날에도 시험부정에 대해서는 법도가 추상같았음을 알수있다.

▲ 개화기에 우리나라 신식학교에서 커닝이 심하자 망국론까지 나왔다.요즘 첨단화된 장비를 이용한 부정시험파문이 확산되고 있다.아무리 엄벌해도 시험장의 부정숫법은 시대에따라 더 첨단화될 것이다.양심만 믿을수밖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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