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글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태조로
  • 승인 2004.12.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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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존슨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우화적 소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고자 했던 교훈은 다름아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과 긍정적 수용을 통해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이용하자는 혜안(慧眼)의 일침이었을 것이다.

 최근 쌀 재협상이 목마름을 호소하는 진통의 절정에 다다르면서 관세화냐 유예냐에 대한 궁극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주시하면서 선뜻 생각나는 소설이다.

 세계자유무역기구(WTO)라는 태풍의 영향권에 이미 들어와 있는 한 거스를 수 없는 쌀 개방화라는 변화의 파고를 운명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변화의 충격이기 때문에 그 소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의 되새김은 더욱 절실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쌀의 관세화냐 유예냐의 선택을 두고 어느 전문가는 마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제 선택만을 위한 대답을 할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고까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부가 지나치게 개방대세론만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쌀 대책을 내 놓아도 농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반론을 펴기까지 한다.

 빗장을 어떻게 열어 제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이와 같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주장과 반론의 치열한 공방전은 농심(農心)을 외면한 채 탁상 끝자락만을 맴돌고 있어 가슴 답답하다. 이미 쌀 개방의 파고라는 변화의 물결은 한반도에 상륙 해 있기 때문이다.

 억측일지 모르나 현재의 WTO체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쌀 수출국들의 자국이익 우선의 협상 논리 하에 있는 한 어떠한 방식을 택하던 쌀 수입개방은 불가피한 우리의 현실이며 더욱이 수입쌀의 아침 밥상 점령은 발 빠르게 진행될 것이 불 보듯 뻔한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 쌀 개방 방식의 선택을 위한 최종 해법의 제시는 정부 및 전문가 협상그룹에 위임해 주고 우리는 변화에 대한 현실적 수용과 더불어 이를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한 치즈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수입쌀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켜 내기 위한 보다 질 좋고 향기 좋은 우리만의 치즈를 찾아 또 다른 새로운 창고와 미로를 찾아 나서자는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쌀 품질의 고급화라는 또 다른 변화에의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만이 우리만의 치즈개발이 가능하리라 본다.

 우스겟 소리 같지만 스펜서 죤슨이 자작 소설을 통해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작은 생쥐를 그토록 고생시키며 두려움의 극복을 통해 치즈를 발견하게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봄직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근 농진청이 정부에 제안한 브랜드 쌀 품질향상방안은 우리만의 치즈 찾기의 미로를 열어 줄 현실적 방안으로 받아 들여 진다.

 그 방안에 따르면 수입쌀과의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치즈를 찾기 위해선 정부, 농민, 생산자단체, 소비자 단체의 삼위일체적인 상호 공조노력이 전제돼야 함을 기저로 하고 있다. 즉, 농민 및 생산자단체는 재배품종의 단일화를 실현하고 정부는 벼 건조·자장·가공시설의 확충과 현대화에 예산지원을 확대 해 주는 한편 소비자단체도 쌀 품질관리기구를 설립해 엄격한 평가로 그 쌀의 품질과 밥맛을 소비자에게 입증시키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이제는 쌀 수입개방이라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과 긍정적 수용을 통해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이용하는 혜안(慧眼)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쌀 품질 고급화를 위해 범국민적인 협력과 노력과 실천에 나설 때이다.

 스펜서 존슨이 화두로 던진 치즈를 옮긴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만의 치즈를 찾아가게 유도한 신선한 외부의 변화, 다름 아닌 빗장을 풀어야 할 쌀 수입개방의 물결이었음을 새삼 느껴본다.

나병훈<전북쌀특화사업단 겸임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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