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권하는 우리문화
술권하는 우리문화
  • 승인 2004.12.09 1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를 맞이한지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갑신년 한해도 불과 한달만을 남겨놓고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누구나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를 맞이한다는 기쁜 마음에 절친한 사람들과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인간관계 형성은 어떻게 보면 술을 함께 나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앞으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할 무렵이면 술을 주고 받음으로써 그 관계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내에서도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을 때 음식과 술을 나눔으로써 회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대학 사회에서도 신입생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술을 나눈다. 또한 가정에서도 손님을 초대하거나 새로운 식구가 생길 때 축하하는 의미를 술로 나타내고 결혼식을 한 후 폐백을 할 때도 신랑신부가 서로 잔을 주고받음으로 비로소 부부로서의 관계형성을 의미하는 것도 그와 같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술은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시각을 반대편으로 돌려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의 폐해를 지적하는 경구들은 수도 없이 많다.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불경의 구절에서부터 ‘전쟁·흉년·전염병 세 가지를 다 합쳐도 술이 끼치는 손해만 못하다’는 철학자의 충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연말연시를 앞두고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얘기들이다.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한 때 국민 1인당 술 소비량에 있어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적정 음주가 심장질환을 없애주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 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선진국에서 속속 나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음주실태를 볼 때 그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情)’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음주문화는 많이 왜곡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어떠한 상태에서든 음주를 하는데에는 누구나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마다 적정한 주량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강권하는 분위기와 이러한 분위기에 마지못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문화로 인해 잘못된 음주문화가 고집스럽게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情)이 많은 우리 민족은 술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후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주사(酒邪)는 눈감아 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곤 한다. 과음이나 폭음이 무용담처럼 화제에 오르고 세계 유례없는 폭탄주가 나타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으레 술 한잔 쯤은 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탓에 술을 강권하는 일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이와함께 모두가 함께 취해야 동질감이 싹튼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음주와 관련한 사건사고가 급증하게 됨을 우리는 보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에서 좋은 술을 마시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잘못된 음주문화 속에 빠지는 순간부터 좋은 사람도, 좋은 자리도, 좋은 술도 더 이상은 함께 하지 않는다.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에는 국민건강상, 사회문화상 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너무도 막대함을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미 수년전에 처음으로 주세가 2조원을 넘어섰다고 하고, 어느 의과대학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30대 이상 5명 중 1명이 지방간이고 주원인은 술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한국인은 모이면 마시고, 취하면 싸우고, 헤어진 후 다음날은 다시 만나 웃고 함께 일한다’라고 어느 외국인이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을 풍자한 글이 메스컴을 통해 전해진 사실이 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즈음에 서서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소병선<군산경찰서 경비교통과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