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46> 사내가 있어야 낳잖아요
평설 금병매 <246> 사내가 있어야 낳잖아요
  • <최정주 글>
  • 승인 2004.12.19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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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2>

옥향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릴 때였다. 옆방의 문이 열리더니 계집종 경이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나와 이 쪽을 흘끔 살피고는 곧 바로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애가 어디를 간다지? 이 늦은 시간에”

옥향이는 “경아, 어디가니?” 하는 말이 나오려는 입을 꾹 다물고는 계집종이 사라진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애가 혹시?”

옥향의 뇌리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 쪽으로 가면 머슴 태국이 거처하는 방이 있었다. 태국이와 경이는 어려서부터 철비네 집에서 함께 하녀와 머슴으로 살아온 허물없는 사이였다.

경이는 주로 부엌일을 하고, 태국이는 논밭 일을 했지만, 가끔은 둘이 함께 들 일을 다니기도 했다. 경이의 나이 열 일곱을 넘어서면서 가슴이 봉긋 솟아 올라 처녀티가 났으며 계집보다 두 살이 많은 태국이는 코밑에 수염이 검실검실하여 사내다운 멋이 풍겼다.

미앙생과 혼인을 한 얼마 후에 옥향이 지나가는 말로 경이 너도 혼인을 해야지, 했더니 겉으로는 펄적 뛰면서도 얼굴을 발가족족 물들이는 것이 꼭 싫은 것만은 아닌 기색이었다.

“아이, 아씨도 참, 전 시집같은 것은 안 갈래요.”

“호호, 시집을 안 가면 아이는 어떻게 낳지?”

옥향이 웃으며 놀렸다.

“사실은 저도 그것이 걱정이예요. 아이는 낳고 싶은데, 여자 혼자서는 낳을 수가 없잖아요. 사내가 있어야 낳잖아요.”

경이가 부끄러워하면서도 또렷하게 대꾸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언젠가 틈을 보아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마. 신랑감으로는 태국이가 괜찮겠지?”

“예?”

경이 뛸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태국이 싫으냐? 따로 좋아하는 사내라도 있더냐?”

“제게 사내가 어딨어요? 사내라면 주인어르신하고 태국이 밖에 모르는데요.”

“알았니라. 태국이가 꼭 싫은 것이 아니라면 내가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마. 둘이 혼인하여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면 얼마나 좋겠니? 서로 의지도 되고.”

그때는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늦은 밤에 고양이 걸음으로 태국의 방을 찾아가는 경이의 모습을 보자 옥향의 뇌리로 서방님 그리운 마음에 저것들을 깜박 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무리 이랫것하고의 약조이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책임을 져야했다.

‘경이 년을 태국이 놈과 짝을 맺아주어야겠구나. 날이 밝는대로 아버님께 그리 여쭈어야겠구나. 경이 년이 속으로 날 얼마나 원망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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