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때 수학자 홍정하 1
영조때 수학자 홍정하 1
  • 승인 2004.12.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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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4년에 태어난 홍정하는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때의 수학자이다. 홍정하는 대대로 수학을 하는 수학자 집안에서 자랐다. 수학자 집안이니 수학 공부를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집안이 대대로 수학을 했으니 학자 집안이었겠지만 그 당시 수학자들은 산학자로 불린 중인 계급으로 양반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산학 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시험에 합격해야 산학자가 되는 공인 수학자 제도가 있었다.

 홍정하는 산학교수를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의 저서 ‘구일집’의 내용은 ‘산학계몽’을 골자로 하고, 일부를 ‘구장산술’이나 ‘상명산법’ 등에서 문제를 추려내고, 당시의 사회적 실정에 알맞도록 수치를 약간씩 바꿔놓는 정도의 형태로 엮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수학책을 넘겨보아서는 안 된다. 구수략 으로부터 겨우 10여년이 지난 다음에 엮어진 이 책에는 전자에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던 천원술의 방법이, 그것도 산학계몽에서의 27개에 대하여, 그보다 엄청나게 많은 166개를 헤아리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 본토에서는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던 천원술의 전통이 한국의 중인 산학자 사회에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학책 『구일집』은 천, 지, 인 등의 8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당시 유럽에서도 상인들이 셈을 전문으로 하는 수학자를 고용했는데, 그것이 직업이 되었다.

 1713년 5월 29일 홍정하는 같은 수학자인 유수석과 함께 조선에 온 중국의 사력 하국주를 만나 수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력은 중국 천문대의 관직으로, 하국주는 천문과 역산에 밝았고 산학에도 뛰어난 실력자였다. 홍정하는 수학 공부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다. 하국주와 홍정하의 만남은 요즘처럼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 풀이나 하는 수학 공부와는 달리 대화를 하는 식이었다. 옛날에는 공부를 대화하는 식으로 했다. 그렇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생각의 부족함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나가려 했다. 홍정하가 쓴 수학책 『구일집』에는 수학의 대화가 소개되어 있다. 홍정하는 하국주를 만나 공손히 아무 것도 모르니 산학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하국주는 문화 대국의 일류 학자인양 어깨를 우쭐대며 ‘이런 문제를 알겠는가.’하는 얕보는 마음으로 문제를 냈다.

 “360명이 한 사람마다 은1냥 8전을 낸 합계는 얼마나 되소? 그리고 은 351냥이 있소. 한 섬의 값이 1냥 5전 한다면 몇 섬을 구입할 수 있겠소?”

 어릴 적부터 산학 문제를 풀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홍정하는 금세 답이 나왔다.

 “앞 문제의 답은 648냥이고, 다음 문제의 답은 234섬이 되옵니다.” 홍정하가 금방 문제를 풀자 하국주는 다음으로 도형 문제를 냈다.

 “제곱한 넓이가 225평방자일 때 한 변의 길이는 얼마요?” 이 문제는 여러분도 모두 풀 수 있을 것이다.

 “제곱해서 225일 수는 15가 되니까 답은 15이지요.” 홍정하는 이 문제도 맞추었다.

 하국주는 또 문제를 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정사각형이 있소.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486평방자이고,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은 작은 쪽의 한 변보다 6자만큼 길지요. 두 정사각형의 각 변의 길이는 얼마가 되겠소?” 물론 이 문제도 홍정하, 유수석 두 수학자들은 모두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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