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56> 옥향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평설 금병매 <256> 옥향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 <최정주 글>
  • 승인 2005.01.02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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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12>

태국이 놈이 다가왔다.

“그랬느냐? 들일은 마쳤느냐?”

“예, 주인 어르신이 분부하신대로 뒤뜰밭에 무와 배추를 갈았습니다. 이제 집안 청소나 할려구요.”

태국이 놈이 빗자루를 들어보였다.

“그러렴. 아버님이 안 계시니, 네가 각별히 잘해야한다. 저녁에는 문단속도 잘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분부대로 잘 합지요. 봄볕이 좋긴 좋구만요. 날마다 뽑아도 날마다 잡초가 나오는구만요. 잡초부터 뽑아야겠습니다요.”

태국이 놈이 쭈그리고 앉아 나무 밑에서 풀을 뽑았다. 허름하게 끈을 맨 저고리 사이로 검은 가슴털이 무심코 들여다 보였다. 미앙생의 가슴에서는 못 보던 것이라 옥향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태국이 놈은 아직 옥향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가슴에도 털이 나는구나. 헌데 어찌 서방님은 없었을까?’

옥향이 침을 삼키며 눈길을 내렸다. 곧 바로 태국이 놈의 불룩한 사타구니가 보였다.

‘저 안의 저 물건으로 경이 년을 밤마다 죽여준다는 말이지? 정신을 홰까닥 돌게 만든다는 말이지?’

옥향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태국이 놈이 고개를 들고 빙긋 웃으며 물었다.

“왜요? 아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다. 어서 풀을 뽑거라.”

“예, 아씨.”

태국이 놈이 무심한 얼굴로 대꾸하고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잡초를 뽑았다. 돌아서서 두어 걸음 움직이던 옥향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얘, 태국아. 너 재미있는 책 한번 보겠니?”

그러자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옥향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

“책이요? 에이, 싫습니다요. 검은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라는 것 밖에 모르는 이놈한테 책이 당키나 합니까요?”

태국이 놈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니다. 너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림책이란다.”

“그림책이요?”

태국이 놈이 몸을 일으켰다.

“따라오너라. 여긴 찬모가 지나다가 볼지도 모르는 곳이니.”

옥향을 몸을 돌려 후원의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태국이 놈이 엉거주춤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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