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62> 나도 정인을 만들어야
평설 금병매 <262> 나도 정인을 만들어야
  • <최정주 글>
  • 승인 2005.01.10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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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18>

어떤가요? 내가 남자를 하나 소개해줄까요?”

“아주머니, 날 어찌보고 하시는 말씀예요? 함부로 말하면 앞으로는 아주머니를 상종도 않을거예요.”

옥향이 화를 냈다. 그래도 방물장수 여인은 싱글싱글 웃으며 내가 다 알지, 하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이것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군요. 정숙하신 아씨한테 쓸데없는 소릴 지껄였군요.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니, 됐어요. 앞으로나 조심하세요.”

그때는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날이랄지,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날이랄지, 소쩍새가 청승맞게 우는 밤이랄지, 꾀꼬리 암수가 나뭇가지에 앉아 괴고리 괴고리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방물장수 여인의 말이 귀청을 때리고 덤볐다.

‘차라리 그냥 웃고 말걸. 화는 왜 냈누? 웃고 말았으면 그 여자가 다시 한번 슬쩍 권해왔을 것이고, 못 이긴 체 사내를 소개받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때로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방물장수 여인은 그렇게 운을 떼놓고 돌아가더니, 한 달이 다 되도록 비깜을 안 했다. 열흘에 한 번 이레에 한번 들려가지고 제 집처럼 잠도 한숨 자고 가고, 끼니 때는 밥도 몇 술 뜨고 갔는데, 화를 냈던 옥향이 섭섭했던지 아니면 멀리 갔는지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경이 년이 태국이 놈과 혼인을 하고 나면 정말 나도 정인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옥향이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벗고 목간통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사지육신 마디마디가 풀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말 꽃잎에서 채취한 것인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따라 퍼지는 향기가 코를 즐겁게 만들고 머리 속을 황홀하게 휘저어댔다.

옥향이 반듯이 앉아 눈을 감고 귀를 활짝 열었다. 문틈으로 얼핏 보이는 동산으로 달빛이 어른거렸다.

‘이제 곧 태국이 놈이 나타나겠지?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호호.’

옥향이 혼자 싱긋 웃을 때였다. 문 밖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씨.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요.”

태국이 방을 향해 말했으나 옥향이 숨을 훅 들이마시며 침묵을 지켰다.

방안에서 아무 대꾸가 없자 태국이 놈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아씨, 목욕물 준비할까요?”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자칫 찬모가 들을 염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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