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71> 아랫도리는 더부룩 했다
평설 금병매 <271> 아랫도리는 더부룩 했다
  • <최정주 글>
  • 승인 2005.01.19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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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27>

꿈결인 듯 잠결인 듯 사내가 방을 나가는 기척을 들었지만, 계집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성난 아비의 눈빛이 천장에서 맴돌고, 네 ,이년, 하는 아비의 고함이 귓속을 파고 들어왔으나, 눈을 뜰 기운도 없었다.

옥향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해가 동산에 둥실 떠올랐을 때였다. 아침을 가져 온 찬모가 조심스레 어깨를 흔드는 기척에 눈을 뜨자 동창을 넘어 온 햇살이 방 안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조반 드셔야지요, 아씨. 해가 중천입니다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밤이 늦도록 책을 좀 읽었더니, 늦잠을 잤네요. 집 안에 별 일은 없지요?”

아직도 몸은 노곤했고, 아랫도리는 더부룩 했다. 옥향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물었다.

“별 일은요. 주인 어른은 아직 안 돌아오셨고요, 태국이는 뒤뜰 밭에 잡초를 뽑으러 간다고 진즉 나갔습니다요.”

“그래요? 아버님이 안 계셔도 태국이가 알아서 일을 잘 하는군요.”

“남의 집 머슴치고 그만큼 부지런한 녀석도 없지요. 경이 년이 복을 받은겁지요. 부지런한 서방을 만나면 계집이 편하잖아요. 더구나 태국이 놈은 기운도 장사니, 처자식 굶길 일은 없겠지요.”

찬모가 이날따라 말이 많았다. 한 쪽 귀로 흘리며 듣는 시늉을 하던 옥향이 조반은 생각이 없으니 가지고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뭐라고 한 마디 쯤 더 하려던 찬모가 밥상을 챙겨 가지고 방을 나갔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 옥향이 간단히 소세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서방님이 떠난 이후 화장대 앞에 앉은 것은 또 처음이었다. 찾아오는 나비가 있어야 꽃은 아름다워지고 싶은 법이었다. 예쁘다, 예쁘다, 하며 보아줄 서방님이 없자 얼굴 꾸미는데도 게을렀었다. 그런데 이날은 문득 화장대의 거울을 들여다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볼이 발가죽죽하고, 두 눈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몸 곳곳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태국이나 만나러 뒤뜰 밭에나 가볼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 옥향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스무 해 남짓을 살아오면서 밭이건 논이건 한번도 들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머슴이 일하고 있는 밭에 나간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태국이가 보고 싶기는 했으나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야 하는 것이었다.

철비가 돌아 온 것은 아침을 거른 옥향이 이른 점심을 먹고 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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