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
  • 승인 2005.01.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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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구두에 중산 모자, 지팡이를 든 콧수염의 신사 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모던 타임즈」에서 보이는 웃음 속에 비수처럼 감추어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유를 향한 절규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1912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30년이 넘게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활동하던 채플린은 1952년 고향인 영국 여행을 떠나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불운의 영화인이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국을 버렸나 아니면 미국이 이 천재를 버렸는가 많은 의문을 갖게 됐다.


 ▼채플린이 미국을 떠나게 된 이유는 당시 미 정가에 불어닥친 매카시 선풍에서다. 20년대 “빨갱이 소동”을 한차례 치른 미국은 2차대전 후 소련과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다시 한번 그러한 선풍을 겪게 된다. 이때의 빨갱이 소동을 매카시 선풍이라고 한다. 이는 극단적인 우익 반공주의자인 공화당의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50년 2월 매카시는 미국 국무성 안에 수많은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그로인 해서 미국의 정부인사를 비롯한 지식인 그리고 노동조합 할리우드 까지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 혐의로 추방당한다.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은 독일의 유명한 망명 시인 브레히트 등 좌파 인사들과 친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채플린은 어느 정치조직에도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진보적 운동에 적지 않은 자금을 주었으며 이따금 정치적 발언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감시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영화 속에 담겨있는 위대한 독재자」, 「무슈 베드두」같은 작품과 함께 그의 정치적 발언에 있다. 그로 인해 매스컴 특히 우익잡지는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한 일도 없다, 나는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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