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77> 혼인이 그리 급하더냐?
평설 금병매 <277> 혼인이 그리 급하더냐?
  • <최정주 글>
  • 승인 2005.01.25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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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32>

그림자처럼 와서 옥향의 몸을 활활 태우다가 재로 만들어놓고 새벽에야 돌아갔다.

그렇게 이레가 지난 날이었다. 찬모는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고, 철비도 가까운 마을에 문상을 간다고 집을 비우고 없었다. 옥향이 후원을 거닐고 있는데, 태국이 놈이 빗자루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벌서 들 일을 마치고 왔느냐? 애썼구나.”

옥향이 활짝 웃으며 바라보았다.

“예, 아씨. 헌데 경이는 언제 옵니까요?”

태국이 놈이 불퉁거리듯 물었다.

“왜 보고싶으냐? 그리우냐?”

“예, 그년이 그리워서 밤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는구만요.”

태국이 놈이 무심히 대꾸하는 말에 옥향의 가슴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밤마다 찾아와 저를 안아주면서도 경이 년을 그리워했다는 태국이 놈의 말에 질투심이 끓어 올랐다.

“내가 있는데도 경이 년이 그리웠다고?”

옥향이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씨는 아씨고, 경이 년은 또 경이 년이니까요. 아씨가 경이 년을 대신할 수는 없구만요.약조하신 대로 혼인을 시켜주실 것이죠?”

“혼인이 그리 급하더냐?”

“남의 눈치 안 보고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으니까요. 아들도 낳고, 딸고 낳고 오순도순 사람답게 살고 싶으니까요.”

태국이 놈의 말에 옥향은 기가 막혔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밤마다 자신을 안았던 태국이 놈은 빈 껍데기에 불과했지 않은가? 마음은 경이년한테 가 있으면서 몸만 자신을 안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옥향이 꽥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난 어떻게 하라고 네 놈이 혼인을 서두른다는 말이더냐?”

“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요?”

태국이 놈이 눈을 크게 떴다.

“네 놈이 경이 년과 혼인을 하면 나한테 오기가 힘이 들 것이 아니더냐? 너희 년놈들이 재미있는 밤을 보낼 때에 나는 독수공방 외로움에 눈물로 밤을 지샐 것이 아니더냐?”

“아씨야, 서방님이 오시면 되지요. 곧 서방님도 오시겠지요. 암튼지 낼이라도 경이 년을 불러들여 혼인을 시켜주신다고 약조를 하십시오. 안 그러면...”

태국이 놈이 말끝을 흐렸다.

“안 그러면?”

옥향이 말꼬리를 이어주었다.

“밤으로 아씨를 찾는 것을 그만 두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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