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등급제와 인재 양성의 역학 관계
내신등급제와 인재 양성의 역학 관계
  • 김용재
  • 승인 2005.06.01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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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은 우리 동량(棟梁)들의 성소(聖所)이다. 이 교실 속에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고, 우정을 쌓으며 장래를 계획한다. 이렇게 성스런 교실에서 무자비한 경쟁만 있다면, 이 장소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을 지나면서 어느 고교 1년생은 한숨부터 쉬었다. 지난 중간고사 성적이 과목별로 석차가 매겨져 집으로 우송되고, 내신 등급은 어떻게 될지 가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잘 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등하교를 하면서 우정을 쌓아 왔건만 왠지 자신의 등급에 맞지 않는 친구인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집에 오면 어머니의 성화가 긴장을 가중시킨다. 한 번의 시험은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의 이력으로 남고 만다. 3년 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2번의 학교 시험을 무사히 치러야 한다. 아, 그 고등학생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할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고 있는가.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풍경은 아름답지만 않을 것 같다.

 사실, 오월은 사랑으로 가득 찬 달이어야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로 이어지는 오월은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달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우리 고등학생들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최근 우리 교육계를 강타한 이슈들 중에서 내신등급제를 주목한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의 기능과 역할, 한 사람의 성장 가능성과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신 등급제 뿐 아니라, 교원평가, 본고사 부활, 기여 입학제, 고교등급제로 이어진 교육 논쟁 모두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어느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면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뜨겁게 자리하고 있어서이다.

 그중 내신등급제는 주목 대상 제1호이다. 지난 달, 내신 압박감에 못 이겨 자살한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고등학생들이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오는 일까지 생겼다. 내신 등급제란 학생부 성적을 5단계의 절대 평가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일정 비율을 고정시킨 9개 등급의 상대평가제로 바꾼 것을 말한다. 내신 등급제 저변에는 교육부의 3불 정책이 있다. 교육부가 ‘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교육정책의 근간이라고 고집 피우고 있는 한, 이 제도도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 못한다. 고교간 학력차가 있음에도 내신 성적을 대입 전형의 주요 요소로 사용하게 되면 도농간, 지역간 학교별로 상존하고 있는 학력차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대학은 대학대로 내신의 불신 태도를 버릴 수 없어 본고사 부활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는 내신등급제가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교육부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학생 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고려한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입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내신을 관리하기 위해 학원과 과외가 더욱 성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고려한 수준별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고교 등급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어찌 황우석 교수 같은 세계적인 석학이 탄생할 수 있을지 반문하고 싶다. 그는 고교 1학년 처음 시험에서 480명중 400등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나라 대입 전형방식은 광복 후 15번이나 바뀌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은 대입제도의 역사이다. 이렇게 자주 바뀐 이유는 인재 양성의 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인재의 양성은 선의의 경쟁이 필수 요소이다. 그 경쟁에 인성교육이라는 충분조건을 제공하면 바람직한 교실이 될 수 있다. 교육은 평등성이나 보편성을 강조할 시기가 있고, 수월성과 특수성을 강조할 시기가 있다. 전자는 초등과 중등 교육에서 후자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강조해야 할 사항이다. 우수한 인재 한 명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오늘날, 우리 교육계는 지나치게 평등성과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사람 사랑의 아름다운 정서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내신 등급제 논쟁에서 부각시켜야 할 일은 제도의 허와 실뿐만 아니라, 교실 풍경의 변화와 학생의 내면세계를 감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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