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보인다
논술이 보인다
  • 승인 2005.06.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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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 세종훈민구술논술대표
제시문 [가]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힌 랑케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제시문 [나]의 주장을 참고하여, 제시문 [가]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역사 연구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가]

인간은 역사학에서 과거를 심판하고 미래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열망해 왔다. 그러나 이는 허황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과거 그것이 원래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기 싫고 추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일이 역사학의 가장 훌륭한 태도임을 알아야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서술할 때는 무엇보다도 사료에 충실해야 한다. 문서에 대한 상세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다른 무엇보다 더욱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역사가가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사건 그 자체가 이야기하는 곳에서는, 다시 말해 사실을 순수하게 나열하는 것만으로 그 관계가 설명되는 곳에서는, 거기에 대해 많은 말을 보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랑케 - ‘보편사의 이념’』

[나]

19세기는 사실을 매우 존중하던 시대였다. 19세기의 역사가들도 대체로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랑케가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한 이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 숭배'의 경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우선 사실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거기서 결론을 끌어내라고 주장했다. 이는 상식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확증된 사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고르듯, 역사가들은 문서나 비문 등에서 사실을 입수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아 집에 들고 가서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해 내놓은 것이 바로 역사이다.

그러나 정확하다고 해서 역사가를 칭찬하는 것은, 잘 마른 나무나 잘 배합된 콘크리트를 썼다는 이유로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사실의 정확성은 필요 조건이지, 역사 서술의 본질적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말을 걸어 올 때에만 이야기한다.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맥락으로 이야기하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가의 몫이다.

사실은 자루와 같아서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혼자 서 있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시저가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넌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가들이 그 나름의 이유 때문에 결정한 일이며, 그 전에나 그 후에 수백 만의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넌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러분이 반시간 전에 걷거나 자전거 또는 자동차를 타고 이 건물에 도착했다는 것도,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관한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아마도 이를 무시해 버릴 것이다. 결국, 과거의 어떤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만든 것은 역사가들의 해석에 달려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크로체는 선언했다. 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성립하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역사가가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만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역사가는 사실이라는 것의 천한 노예도 아니고, 포악한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이며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다.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따라 사실을 형성하며, 자기의 사실에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매달려 있다. 둘 중 어느 한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은 결국 다음과 같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카 - ‘역사란 무엇인가’

▶ 유의사항

1. 논박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2.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로 할 것.

3.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어휘를 사용하지 말 것.

4. 한 편의 완결된 글이 되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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