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야 할 권위주의
사라져야 할 권위주의
  • 진봉헌
  • 승인 2005.07.05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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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권위주의와 개인주의가 평행선을 그으면서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지난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초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도 그러한 현상이 파열음을 낸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권위주의의 뿌리는 봉건적 가부장제이다. 거기에다가 식민지 시대에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병영문화가 권위주의를 사상 유례가 없는 폭군으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독재정권들이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힘의 원천도 다름 아닌 권위주의이었다.

 권위주의의 논리는 단순하다. 그가 가장이므로, 상관이므로, 왕이므로 그 조직의 구성원은 무조건 복종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의 필연적 결과는 구성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지키려고 그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자를 응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와 산업화 사회에서는 권위주의는 박물관에 유폐시켜야 할 유물이다. 대가족과 농업사회가 해체된 지금 봉건적 가부장제는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낡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족간의 격의 없는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불화와 반목의 메마른 사막으로 만드는 주범으로 남아있다.

 학교에서의 폐해는 더 심각하다. 식민지 시대의 병영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규율과 체벌이라는 폭력적인 요소가 지금도 학교의 상징이다. 학생들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 학교라면 구성원인 교사들은 깊은 자기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교장의 훈화도 여전하고,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듯한 교사들의 학부모들에 대한 위압적인 태도도 여전하다.

 병영문화의 원조인 군대가 여전하다는 것은 이번의 총기난사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고참이 신참을 학대하고 괴롭힘을 당한 신참이 고참이 되면 다시 새로운 신참을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 것은 군대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앞으로도 가정과 학교에서 수평적 관계에서 지위와 역할에 따른 상명하복 관계를 만드는 교육이 성공하지 못하다면 병영문화의 개선은 요원하다.

 지난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이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는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는 국가의 존재의미가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는데 있다는 신념이다. 개인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개인주의는 국가 이외에도, 가정, 학교, 직장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한다. 가정은 사회생활에 지친 가족을 위로하는 따뜻한 보금자리이고,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이다. 대가족이 중심이 된 농업사회에서는 가정이 일터이고 경제적 공동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학교도 더 이상 비굴한 식민지 백성을 육성하거나, 허구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수평적 네트워크사회에서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질서를 형성해가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이끌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음 통하여 한단계 한단계 발전하도록 준비되고 배려되어야 한다.

 직장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황제식 독단경영의 회사들은 시장에서 퇴출된지 오래다.

 이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성취해야 할 시점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의 의식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적 요소를 뿌리 채 뽑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타인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개인주의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결과 권위주의가 사라진다면, 사회에는 평화와 정의가 넘칠 것이다.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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