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평등의 실현이 인간 존중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가)의 필자의 입장을 근거로 (나)의 ‘노라’의 결정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양성평등이 전통적 가정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논술하시오.
(가) 나는 김혜린의 작품 속에서 가장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인물인 아라를 진짜 페미니스트로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아라가 임신 후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을 삭제해야 한다. 한 여성의 생명은 몸이 더렵혀졌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버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김혜린 만화 다시보기 - 페미니즘>
(나)노라 : 네,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헬머 :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라 : 네. 다만 재미있었을 뿐이에요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무척 친절하셨어요. 하지만 우리 가정은 다만 놀이하는 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여기에서 나는 당신의 장난감 인형같은 아내였던 거에요. 마치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듯이.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제 인형이었어요. 아이들의 상대가 되어 놀아주면 저는 그것이 무척 기뻤어요. 그것이 우리의 결혼이었어요.<중략>
노라 : 하지만 당신이 하신 말씀은 옳았어요. 제게는 그럴 힘이 없어요.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제게는 따로 있어요. 저 자신을 교육하는 데 노력해야만 하겠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하는 저를 도울 수 없어요. 저 혼자서 해야 할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 곁을 떠나려 해요. 입센 <인형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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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불어 온 여권신장의 바람은 우리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조금씩 조금씩 사회를 바꿔나가던 그 외침이 요즈음 TV, 라디오, 책,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사회 곳곳에 여성의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최근의 호주제 폐지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처에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이 녹아든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떨쳐내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 은 그 당시 남성우월주의에 찌들어있던 서구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여주인공 노라의 결정은 당대의 남성들에겐 반성을, 여성들에겐 깨달음을 주는 충격적인 것 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큰 힘을 실어준 충격적 발언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제시문 (가)의 필자는 여성을 위한 진정한 해피엔딩은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며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노라의 결단은 자신에게 지워진 숙명적 굴레를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결정 이었다는 점에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노라와 같은 결정이 현대사회에서 여권신장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대답은 ‘아니오’다. 노라의 결정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들어있다. 바로 여성의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아이들의 인권문제나 가정의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라의 결정에 담긴 입센의 의도는 당시의 사회에 변화를 위한 충격을 던져주기 위함이었을 뿐, 결코 그대로 모든 여성들이 집을 박차고 나와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의 실현은 ‘조용한 혁명’이 되어야 한다. 급격한 여권신장은 심각한 가정불화와 같은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 하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이 너무 소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또 중요한 것이 자녀교육이다. 남녀평등의 실현이 확실하게, 영구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세대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계시는 전통적 가정에서는 그런 조용한 방법도 힘들다. 한 평생 쌓아올린 신념의 탑은 그 견고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여성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남성의 조력이 필요하다. 남녀평등의 실현에 여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성의 역할이다. 아무리 견고한 남성우월주의의 탑도 그 대상인 남성이 거부한다면 어쩔 수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양성평등의 외침에 우리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권신장이 이루어 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도처에 남성우월주의가 웅크리고 있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남녀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의 조용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남성의 조력까지 더해진다면 우리사회는 남녀평등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조화로운 사회통합과 진정한 인간존중사회의 이룩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