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지금-최형재
전북은 지금-최형재
  • 이수경 기자
  • 승인 2005.08.0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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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현장에서 느끼는 데자뷰

최형재(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

제자리걸음도 이런 지독한 제자리걸음이 없다. 어쩌면 우리 시민들은 자연 재해를 대하는 정부나 지방정부의 태도에서 과거 어느 때 겪은 것 같은 현상을 또 겪는 데자뷰(deja-vu)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연재해로부터 큰 피해가 별로 없던 전북을 흔히들 전라복도(福道)라 칭했다. 태풍에 따른 강풍이나 폭우 등에 따른 침수 피해가 다른 시?도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지역도 더 이상 자연재해로부터 복 받은 지역이 아님이 확인 되었다. 태풍과 집중호우, 폭설, 돌풍 등이 빈번하게 전북을 휩쓸고 있다. 여름철 열섬 현상으로 인한 폭염도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자연재해다.

지난 3일 내린 폭우로 가족을 잃거나, 자식처럼 키워온 농수산물을 몽땅 쓸려 보낸 사람들에게 마음 깊은 위로를 드린다. 또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지만, 수해 피해자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공무원과 자원 봉사에 뛰어든 시민들에게서 희망과 사람 사는 정을 느낀다.

필자도 폭우 후 아름다운 가게 운영위원장 신분으로 소속 봉사자들과 함께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5톤 트럭에 라면, 세재, 각종 생활용품을 실어 전달했고,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에 시름하며 삶의 끈까지 놓아 버리려는 피해 주민의 손을 맞잡고 눈물만 흘렸다.

더 이상 자연재해로부터 복 받은 지역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안 된다. 자연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과 하천정비, 도로개설, 산림파괴 등은 시급히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시급한 것은 재난안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이미 물난리를 겪고 있을 때가 돼서야 대피명령이 내려지는 탁상행정에 이제 우리 시민들은 질려버렸다.

재난이 발생한 다음, 피해 주민을 돕기 위한 각종 응급구조 시스템도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우나 각종 재난의 등급에 따라 철저한 대응 시나리오와 구조체계가 갖추어져야 함에도 정부가 수립되고 60년이 지났지만 매회 그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폭우로 전주천과 삼천이 범람 위기를 맞았다. 설계빈도수를 상회하는 폭우가 큰 원인이지만, 물이 빠지지 않는 아스콘 포장과 폭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방재시설이 부족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도심 주변의 농경지를 보존하고, 유수지와 저류지 등을 확보해 수(水)공원으로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재난을 이제 인간 생활에 불가피한 요인이 되었다. 환경부하를 고려하지 않는 막개발과 재난안전 시스템이 갖추어 지지 않은 도시계획으로 인재(人災)성 재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재해를 예견하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미련하고 한심한 짓이 없을 것이다.

옛 말에 양병천일(良兵天一) 용병일일(用兵一日)이라는 말이 있다. 천 일 동안 병사를 훈련하는 것은 하루 혹은 한 번의 기회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매년 반복되는 재난을 보면 일일이 아니라 용병천일(用兵天一)이 필요한 사회인지도 모르겠다. 되풀이 되는 재해에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된다. 인간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지만, 더 이상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관리와 재난구조 시스템이 절실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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