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맛이 먼저다(상) 길목에서 보여줘라
눈맛이 먼저다(상) 길목에서 보여줘라
  • 서영복
  • 승인 2005.08.16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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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전국 각지를 자동차로 돌며 도로경관과 주변 풍경을 살폈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게 자연의 빛이다. 그 빛 속에 함께 어우러져, 우리 사람이 가꾸고 빚어놓은 경관과 관광자원도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인상 깊은 대목과 새삼스런 교훈 몇 가지는, 여행이랄 것도 없는 이번 짧은 도로주행의 뒤끝에도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바야흐로 전 국토가 희망과 활력을 찾아 나서고 있고, 그런 만큼 몸살도 앓고 있다. 지역혁신과 공공기관 이전 그리고 소도읍 가꾸기, 농촌체험관광, 경관농업 등이 추진되고 있는 때다. 비록 길 위에서 느끼고 길가에서 새겼을망정, 골골샅샅 쏟아내 놓고 있는 요모조모는 각 지역의 실상을 한눈에 어림할 수 있는 좋은 잣대요 본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주마간산’의 기억들

 여주의 이포나루 근처 연도에는 군에서 일련번호를 부여한 참외 농가직판장이 도열해 있다. 소득 ? 세수 ? 신뢰 등의 면에서 효과가 있지 싶다. 강경의 젓갈판매점들은 국도변 길목을 잡아 발목을 붙든다. 적멸보궁과 열목어로 유명한 정선의 정암사에서는, ‘수마노탑’을 가리고 있던 나무 일부를 잘라내기도 했다. 절제 속에 가시성과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밉질 않다. 함양은 상림 하나로 부족했던지, 옆 논을 각국의 연꽃과 수생식물 연못으로 조성하여 보완과 상승효과를 기하고 있다.

 '경관도로'와 '전망 좋은 곳'도, 전남지역 여기저기에 지정되어 있었다. 경북 봉화의 송이 모양일부 버스 정류장과 보성의 녹차잎 색 정류 표지판 등, 많은 시군들이 나름대로 이미지 형성을 꾀하고 있었다. 도처의 소나무 한 그루, 마이산 부근 산마루의 조그만 정자가 원경요소 되어 낭만을 불러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역시 골백번 설명보다 길섶의 풀 한 포기라도 ‘보여주는’ 게 으뜸이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던 고성지역 어름에선, 공룡형상 야간조명이 돋보였다. 존재조차 몰랐던 충주 부근 앙성온천은 네온사인으로 눈길을 잡았다. 순천 승주읍 어느 야산의 감나무 해충퇴치 등(燈)들마저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당직실을 ‘야간 주민안내실’로 운영하고 있는 양평군의 경우는 감투상 감이었다. 조명 위한 시설과 장치는 ‘전방위’ ‘전천후’ 홍보에 필수다. 밤 길손에게 도시와 마을과 풍경은 불빛으로 존재한다.

 가로변 화단 또한 구절초 같은 야생화 식재가 늘어나고 길이도 길어지고 있다. 도로사정이 좋아지면서 주행속도가 빨라지고 사물의 크기에 대한 시체험이 달라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게다. 담양과 순창 도로변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처럼, 인접지역과 연계성을 갖는 것도 각인에 유리하다.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화음을 이뤄야 한다는 거다.

가꾸고 보완하자

 욕심과 기대 때문일까? 전북에서는 장점보다 아쉽고 소홀한 구석들이 더 눈에 꽂혔다. 시계확보가 미흡한 수변 순환도로, 고비용에다 어울리지도 않는 소재로 만든 가로등, 널려있는 전봇대와 전선 문제에 ‘지중화’ 사업비 부담만 되뇌고 있는 게 맘에 걸렸다. 세계유산임을 자랑하면서도 사방팔방 나들목의 야간조명이나 안내표지판 설치를 미루고 있는 곳, 관광요지이면서도 간단한 안내 팸플릿조차 비치하고 있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도로의 경관만이 아닌 풍경에 관한 디자인과 정비사업은 요원한 일인가? 도로의 기능과 안전, 투자 우선순위만 따지고 있는 건 아닌가? 전망 좋은 곳에 덩그러니 세워놓은 팔각정 하나하나를, 시군 경계의 그렇고 그런 표지석과 조형물들을 언제까지 봐주고 있어야 하는가? 간판만으로도 우리는 주인의 음식 솜씨를 짐작한다. 먹을거리보다 볼거리가 사람들을 먼저 잡아끈다는 점을 새삼 새겨, 도로풍경부터 가꾸고 보완했으면 한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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