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부실자료 제출ㆍ소환불응
국정원 부실자료 제출ㆍ소환불응
  • 승인 2005.08.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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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 의존 한계, 국정원 압수수색 곧 현실화될 듯
국정원(안기부) 도청과 관련된 전ㆍ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 소환에 잇따라 불응하는 등 검찰의 진실규명 노력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수사가 큰 고비를 맞고 있다.

국정원이 최근 검찰에 제출한 도청 관련 260여쪽 분량의 자체 조사 자료도 매우 부실해 수사 단서로 활용하기에는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자료는 안기부 도청팀 미림의 활동에 대한 진상 조사 내용이 대부분이고,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원 도청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어 국정원의 진실 규명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단서가 별로 없어 어렵다. 단서를 찾으려고 가능한 일은 다 하고 있다"며 소환 조사에 불응하는 전ㆍ현직 직원들의 진술 확보가 필수적임을 내비쳤다.

참여연대의 고발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20여일이 지났는데도 삼성그룹의 불법자금 제공 의혹이 담긴 도청물 유출 경위만 마무리됐고 안기부 도청 관련 부분은 아직 전ㆍ현직 실무자들의 진술을 확정하는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검찰은 외양상 서두를 게 없다며 느긋한 모습이지만 실무자들을 충분히 조사하지도 못하고 지난주 후반부터 국장, 과장급 전ㆍ현직 국정원 중간간부들을 조사, 내부적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검찰은 전ㆍ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 이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처벌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굳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털어놓지 않더라도 어떠한 법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림 재건에 깊숙이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은 국정원 조사에서 철저히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 조사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협조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국정원 조사에도 응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며 오늘의 사태를 어느 정도 예감했으나 막상 중요한 대목을 조사해야할 시점에서 당사자들이 소환에 잇따라 불응하자 매우 난감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에 대한 예의를 가급적 갖추겠다던 당초 입장에서 급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최대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발언한 뒤 관련자 조사 과정에서 강제수사는 배제하겠다고 한 수사 방법을 재검토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주말 소환에 불응하는 관련자들에 대해 강제수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지만 17일에는 "생각해봐야한다"며 수사 방식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수사 단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검찰이 국정원을 전격 압수수색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검찰은 그동안 김승규 전임 법부장관이 국정원장으로 옮긴 지 얼마 안된 데다 같은 국가기관이라 모양새도 안 좋을 뿐더러 효과도 의심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신중한 조사방법을 찾았던 검찰로선 도청이라는 국가 차원의 범죄행위를 규명하기 위해 이제는 우회로 대신에 지름길 수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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