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맛이 먼저다(하) ― 속이 차야 때깔도 고운 법
눈맛이 먼저다(하) ― 속이 차야 때깔도 고운 법
  • 서영복
  • 승인 2005.08.17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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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에서 보여주자’ 했다. 그렇다고 외양만 그럴듯하게 꾸며서도 곤란하다. 제일가는 미용법은 건강 아니던가? 그렇듯 내용과 실질이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떡’이 어디 그리 쉬운가? 진실과 지극 정성 쏟아 붓고 눈 빠지고 손 부르트도록 기를 써야 나온다. 다시 이번 자동차 여행을 되짚어본다.

독창적인 현장들

 장흥은 정동진을 모델로 자기 지역을 ‘정남진’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이 곳 늑룡교에 세워진 종려나무 꼴 가로등들은 색다름에 대한 몸부림 같기도 하다. 함평에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나비축제 그리고 자운영 밭이 떠올랐다. 공주지역의 국도변 휴게소와 중부고속도로의 오송휴게소에서는 논 경치 조망공간을 찾아들었다. 산청은 허준의 스승 유의태의 약수터 부근에 전통한방 휴양 관광지를 조성중이다. 안동에서는 조선시대 한 부부의 사랑을 기린 ‘월영교(月暎橋)’를 만들어 명소로 꾸미고 있다. 조그만 것을 크게, 의미부여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의 소산들이다.

 태백의 한 도로구간에서는 백자작나무를, 평창군 거쳐 봉평 가는 어느 길가에서는 공 들여 전정한 아카시나무를 가로수로 만났다. 너도나도 휩쓸려 벚꽃나무 심어댄다든가 경관작물로 유채꽃 선호하는 경향과 대비된다. 청주, 원주 철도역사의 단순한 현판 글씨에서도 남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충절의 도시” 진주에서 교통요지에 대나무를 가로 경관요소로 치밀하게 배치해 놓은 점도 훌륭하다. 각 고장의 특성에 관한 표현들도, 이 같은 구체적 보완장치가 수반될 때 호소력 있다. ‘사랑’ ‘선비정신’ 같은 걸 부르짖는다면, 어떻게 그 고장의 현재와 연결되고 생활 속에 발현되게 할 것인지 고민할 일이다.

 치악산 부근의 한 도로변 가게에서는 감자떡 포장과 함께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안내문을 받아들었다. 전주 비빔밥처럼 ‘어디 식(式)’ 브랜드 전략과 스타일 창조의 하나로도 보였다. ‘즐기는 법’ ‘조리법’ ‘포장음식’ 개발 같은 게, 특산품이나 별미의 이동성과 확산력을 키우고 기억을 강화시키는 방법이요 홍보수단이지 싶다. 한지·목칠공예·인삼·곶감 등 전북의 각 고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타 지역의 특산물 산지들도 들러봤다. 자연자원 또는 역사와 전통 못지않게, 사람과 창의성과 물적 투자와 행정지원과 홍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소홀한 것

 부정적인 광경이나 사실들도 접했다. 공급이 달려 다른 곳에서 차(茶) 원료 갖다 쉬쉬하며 만들어내는 곳, 손님들 북적댄다고 전통경관 훼손할 만큼 거창한 건물 신축하는 평창의 어느 음식점, 상한 음식 항의 받고도 반응 하나 없는 전주 한옥마을의 한 식당이 있었다. 칡넝쿨이 가로수를 뒤덮고 있는 곳,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점멸등 하나 없는 곳, 표지판 따라가다 길 잃은 곳, 악취 풍기고 어울리지 않는 음악 틀어대며 사람 쫓아내는 곳, 그리고 최근 개발한 관내의 관광매력물이나 명소에 대해 소관 부서가 아니어서 잘 모른다고 하고 마는 시군 공무원들도 있었다. 좀 된다 싶어도 진실성과 친절로 품질을 관리하는 일, 최소한의 기본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자동차 바퀴는 도로 위를 달리나 우리들 눈은 풍경 속을 달린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고속국도·일반국도·지방도·시군도와 그 주변 풍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각 도로의 구성물과 경관요소들의 내용을 알차게 채우고 알뜰살뜰 가꿔나가자. 그럴 때 국토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풍경은 큰 자산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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