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물 (水), 덮친 말 (言)
엎친 물 (水), 덮친 말 (言)
  • 김진
  • 승인 2005.09.07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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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카트리나로 인한 책임론 공방이 뜨겁다.

 우리가 늘 재해를 겪을 때마다 되새김하는 天災냐! 人災냐! 하는 책임문제가 피해결과를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방국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기에는 우리의 처지가 만만치가 않다. 지난달 2~3일에 걸쳐 내렸던 64년만의 집중호우로 인해 도내의 피해가 엄청날뿐더러, 3년 전 태풍<루사>보다 강하고 2년 전의<매미>와 맞먹는 대형태풍<나비>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게다가 추석은 불과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수재민들의 어려운 처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 엎친 물

  전북은 지난달에 겪은 64년만의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큰 피해를 입었던 진안과 정읍, 김제 등 도내의 농민들이 수해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감당하기도 벅찰 지경인데 복구에 진력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규모의 집회와 함께 한 해를 바쳐 경작한 논을 갈아엎는 처지에 이르렀다.

 정부의 미흡한 복구지원에 대한 성난 민심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엔 진안농업인단체와 수해지역 피해 농민들이 진안군 동향면사무소 앞에 모여 까다로운 관련 규정과 턱없이 모자라는 복구비의 지원을 규탄하며 <재해지역> 선포를 요구하는 시위를 가졌다.

 또 29일에는 정읍과 김제 등에서 시위를 갖고 논을 갈아 엎었으며 30일에는 코아호텔 앞에서 전국농민회 전북도연맹 주최로 <재해지역 선포와 농민 생존권쟁취를 위한 농민대회>를 여는 등 분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습격하는 일까지 일어났으니 수해 농민들이 어디까지 몰려있는지 그 다급함을 짐작 할만 하다.

  * 덮친 말

  수해의 피해가 커지자 8월7일 동부 산악지역의 수해현장을 방문한 강현욱 지사는 허탈감에 빠져있는 피해 농민들에게 <재해지역> 선포에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지정이 안 된다면 이에 준하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또 8월14일 진안과 무주·장수 등 지역구에서 일어난 수해 현장을 살피러 온 정세균 원내대표도 “현장을 돌아보니 수해 당시의 참상이 그려진다.”며 수해지역의 복구활동에 적절한 지원을 약속했다.

 농민들은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들을 믿었다. 그들은 현 여당의 원내대표이고 전북행정의 수장이었다.

 그들이 현장에 와서 보고 그렇게 이야기 할 때에는 그럴만한 판단기준과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필자가 현장을 돌며 만나 본 피해농민들은 분명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기대가 너무 컸는지, 아니면 현실의 제도적 장벽이 높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특별재난지역>선포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수해농민들은 <엎친 물에 덮친 말>까지 뒤집어 쓴 격이 되었다.

 뒤늦게 도의회에서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재해지역 선포를 촉구했다고 하는데, 이게 도의원들이 책상에 앉아 촉구하고 건의한다고 될 일인지 되묻고 싶다.

  * 한가위를 앞두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일 당·정 협의를 통해 전북지역의 수해복구에 국고 3천918억원을 포함, 4천872억원을 지원키로 했다고 한다. 실제적인 복구비나 수재민들의 사유시설 복구, 또는 농산물의 보상에는 채 미치지 못하는 지원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표명대로 수해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는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우리 모두도 정성을 보태 내 고향, 내 부모들의 아픔을 나누는 선행에 동참해야 할 것이며 추석을 앞두고 선출직공무원들이나 차기 선거를 준비하는 선량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

 명절 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한 표> 얻어 볼 요량으로 하는 나의 한마디가 농민들의 마음을 두 번 덮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경희대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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