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선생의 논술 지상강좌(14)
최찬선생의 논술 지상강좌(14)
  • 승인 2005.09.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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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의 도덕 불감증] 

 <논제> 

 다음 글을 읽고 제시문에서 말하는 논지를 분명히 설정하고, 이와 같은 예를 현대사회에서 찾아 함께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유의사항 :

 1. 논지를 분명하게 설정할 것

 2.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서술할 것.

 3.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할 것

 4. 어문규정을 준수하고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200자 정도로 할 것.  

 <제시문>

 경제학의 몇몇 강좌에서는 경제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고 그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제물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필자는 『경제 원론』 과목을 수강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 한 단원을 끝내면서 그 단원의 내용을 보다 더 확실하게 이해하는 데에 보탬이 될 여러 개의 문제 풀이를 과제물로 부과하였다. 가급적이면 각 문제에 대해서 친구들끼리 열심히 토론하도록 학생들에게 권유도 하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리포트를 작성할 때에는 절대로 베껴서는 안 되고, 자기가 직접 자기 글로 작성하도록 요구하였다.

 70여 명의 수강생들이 과제물을 제출하였고, 필자는 각 학생들의 과제물을 하나씩 읽고 한두 줄씩 의견을 써 주기도 하며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곧 몇몇 학생들의 과제물이 서로 유사한 것을 발견하였다. 사실 처음부터 학생들이 리포트를 베껴낼 것으로 전제하고 살펴본 결과는 아니었다. 단지 어느 두 리포트에서 틀린 글자가 같은 위치에 똑같이 나타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였다. 예컨대 한 학생의 리포트에 '통화량의 증가를'이라고 적혀야 할 것이 '통화량을 증가를'이라고 씌어 있었는데, 다른 학생의 리포트도 비슷한 위치에 똑같은 오자(誤字)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두 리포트에 틀린 글자가 똑같은 위치에 나타났다는 것은 경이롭기도 하지만 분명히 예사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그 오류가 보였던 리포트와 방금 같은 오류를 발견했던 리포트를 같이 놓고 비교해보니, 비록 두 리포트의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치하고 몇 줄씩 또는 몇 글자씩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필자는 학생들의 컴퓨터 학습을 권유하는 입장이라서 워드프로세서로 과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였기 때문에 프린트해서 제출한 과제물은 유사 여부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원전(原典)'은 의외로 소수였고, 몇 개의 원전을 적당히 재편집해서 제출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담당 교수를 화나게 한 것은 학생들이 교수의 눈을 속이려 한 행동 때문보다는 학생들의 도덕 불감증이었다. 이러한 행위를 부정직하다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심코 저지른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리포트를 보여 주는 행위를 우정에 찬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우정인가. 리포트 정답을 보고 베끼게 함으로써 친구가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인가. 아니면 친구에게 정답을 설명해 주어 친구가 자기 힘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특히 이 리포트는 10점 만점으로 점수화 했는데 한 학기에 여러 번 리포트를 작성하게 하니, 사실 한 차례에 10점이라는 점수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러한 10점을 얻기 위해서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는 분명 부정직한 짓이고, 자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점수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양심과 교수를 속이는 치사한 행위이다.

  필자는 강의실에 들어가 리포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마치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학생들에게 오 헨리의 「20년 후(20 Years After)」라는 단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필자는 학생들에게 만약 여러분이 그 경관이라면 친구를 체포하겠는지 또는 체포하지 않겠는지 대답해보라고 물었다. 몇몇 학생들을 지명해서 물어본 결과 대부분 체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본 즉 우정 때문에 도저히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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