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구술학습의 편견
논술·구술학습의 편견
  • 박제원
  • 승인 2005.09.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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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구술(이하 논술) 바람이 거세다. 초등학생부터 ‘논술을 공부해야 한다’ 는 플랑카드, 사설학원마다 논술 수업, 유명강사라는 간판 하에 ‘기업형 논술팀’ 까지 순회공연(?)하니 ‘논술 춘추전국시대’ 다. 하지만,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라는 말처럼 성행하는 논술교육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논술은 글쓰기와 말하기로 특정교과 영역이다.” 라는 편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일반 및 심지어 학교에서조차도 논술이 특정 교과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베이컨에 따르면 ‘시장의 우상’(idola fori),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다. 시장의 우상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추종하는 선입관이며 극장의 우상은 극장에서 허구가 실재처럼 상영되듯 전통적인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편견이다. 결국 “전통적으로 논술은 글쓰기이고 글쓰기는 특정 교과 영역” 이라는 생각이 “논술은 특정 교과 영역.”이라는 편견을 만든 것이다. 논술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세계의 사물과 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술은 특정 교과로 한정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논술교육을 담당할 특정 교과를 하나만 고른다면 <철학>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공교육에서 논술교육이 잘 진행된다고 소개되는 서울 소재의 중동고등학교, 동북고등학교 등 주요학교들의 논술과정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거론되는 특정교과와 관련한 선생님의 노력과 분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면책의 특권과 무임승차(Free-ridding)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기우(杞憂)를 말하고자 할 뿐이다.

둘째, ‘기획특강’이다. 고액(?)으로 이루어지는 기획특강은 ‘잘하는’, ‘검증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그들은 통상 몇 회에 걸친 강의로 논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기획특강만 수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라는 환상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논제해결능력은 기획특강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기획특강을 고액의 수강료로 한 20회 쯤 들어 등골이 휘는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본질적으로 기획특강은 답을 주지 않는다. 기획특강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셋째,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부재다. 논술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의 전형적인 답은 구양수의 삼다인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그러나 이는 추상적인 ‘슬로건’ 일 뿐이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추천되는 책이 무수한데 어떤 순서로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배경과 저자의 의도를 체계적으로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당위성이 거기에 있다. 가령 학생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견해를 물어볼 때 얼마나 답할 수 있을까? 처음 들어본 책이라고 답변하는 학생들도 상당히 나올 정도인데 시대적, 공간적 배경지식이 없는 학생들에게 <군주론> 읽기는 짜증일 뿐이다. 학문에는 학습원리와 단계가 있다. 논술은 그러한 방법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넓히는 것이다. 원리와 형식을 학생들에게 제시하지 않고 ‘삼다’와 ‘비판적 사고’, ‘뒤집어라’ 라는 답은 설득력이 없다.

넷째, 공교육 현장에서 논술의 중요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부족하고 소화능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사교육 시장에서 논술이 성행하는 근본적 위험요인이다.

편견의 장막을 걷지 않고서는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결국 효율과 대안의 모색도 편견을 버리고 논술학습을 올바로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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