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477> 다리 세 개를 몽땅 잃게 생겼군요
평설 금병매 <477> 다리 세 개를 몽땅 잃게 생겼군요
  • <최정주 글>
  • 승인 2005.09.27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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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맞바람이 불다 <62>

불씨가 깊은 아궁이는 작은 부지깽이로는 아무리 들쑤셔도 불이 피어나지 않는 법이었다. 앞으로 만날 여자들이 모두 아궁이 바깥쪽에 불씨를 가지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불씨가 어디에 있는가는 부지깽이로 들쑤셔보아야 아는 법이었다. 길다란 부징깽이로는 가까운 곳의 불씨도 건드릴 수 있지만, 짧은 부지깽이로는 깊은 곳의 불씨는 들쑤실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장굉이 놈은 무슨 일이지?“

미앙생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지금껏 스물 다섯 해 남짓을 함께 살았지만, 주인의 심부름을 허투루 한 일은 없었다.

‘설마 여자 재미에 빠져 도망을 간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저 혼자 손장난으로 만족을 느끼던 놈이 여자의 따뜻한 살맛을 알았으니, 손장난의 허무함을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이제 청아현에 대물의 주인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났을 것이니, 청루의 기생이며 남편없는 미망인들이 부처님처럼 떠받들어줄 것이 아닌가? 마음이 우쭐하여 기생들의 치마폭에 휩쌓여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렇드래도 아침 일찍이는 돌아오겠지.’

미앙생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장굉이 놈은 한낮이 되어도, 해가 서산에 걸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속없는 여자들 댓 명이 대물을 찾아왔다가 헛물만 켜고 돌아갔다.

미앙생이 장굉이 놈을 찾으러갈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발차림으로 나오던 땡초가 말했다.

“기다리지 마시오. 내 장처사의 관상을 보니 주인을 배신할 상은 아닙디다. 한 사나흘 지나면 돌아올 것이요. 내가 지금 나들이를 가는데, 뭐 시키실 일이 있으면 시키시오. 술이 떨어졌소? 아니면 고기 안주가 없소?”

“아닙니다, 스님.”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에 심부름까지 시키는 것이 미안한 미앙생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쩌면 저녁에 나도 못 돌아올지 모르겠소. 때가 되면 공양주보살이 공양은 차려줄 것이오만, 심심하시겠소.”

“어쩔 수 없지요. 혹시 장굉을 만나시거던 제가 화가 단단히 났다고 전해주십시오.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다리를 분질러버린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러리다. 허허허, 장처사가 잘못하다간 다리 세 개를 몽땅 잃게 생겼군요.”

땡초가 껄껄걸 웃으며 산문을 나간 다음 미앙생이 방으로 돌아와 춘화첩을 꺼내었다. 이상하게도 새벽에 잠깐 일어서는 기척을 보이던 녀석이 꿈쩍을 않고 있었다. 아침에도 보정환을 잊지 않고 먹었으니까, 녀석이 기척을 하는가 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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