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479> 부자집의 마나님들같기도 한데
평설 금병매 <479> 부자집의 마나님들같기도 한데
  • <최정주 글>
  • 승인 2005.09.29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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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맞바람이 불다 <64>

여자의 긴 목이 너무 처량하게 보여 미앙생이 저기, 하고 입을 열 때였다. 저만큼 산문 밖에 비단옷으로 잘 차려입은 여자 셋이 얌전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녀인듯한 여자에게 무거워보이는 보따리까지 들리고 오는 걸 보면 청루의 기생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가시고 사나흘 후에 다시 한번 오시지요. 그때는 대물의 주인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앙생이 문을 닫을 듯이 말하자 흘끔 뒤를 돌아 본 목이 긴 여자가 막 산문을 들어서는 세 여자를 발견하고 할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잘 가시오, 라고 속으로만 인사를 하고 미앙생이 얼른 문을 닫고 방바닥에 앉아 책을 펴들고 읽는체 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발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계세요? 하고 찾을 걸로 짐작한 여자들의 발소리가 법당 쪽으로 멀어지는 것이었다.

‘대물을 찾아 온 여자들이 아니었던가?’

미앙생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을 내려놓고 보정환과 보정고를 품 속에 품고는 밖으로 나왔다. 무자암에 머물면서 죽 그래왔듯이 뒷짐을 지고 점잖은 걸음으로 도량을 왔다갔다 인기척을 내다가 소일암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그러면 얌전한 여자는 보는체 마는체 했고, 바람기가 있는 여자는 언제 보아두었는지 미앙생이 올라간 소일암쪽으로 산책삼아 나왔다는 시늉으로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저 여자들은 어떤 부류일까? 나를 따라올까? 안 따라올까? 하녀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부자집의 마나님들같기도 한데.’

미앙생이 소일암 가는 길의 중간 쯤에 있는 바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채 한식경이 안 되어 여자 셋이 이번에는 얌전한 걸음이 아니라 허둥지둥 서두르는 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 미앙생이 앉아있는 곳이 큰 나무의 밑둥치 부근이라 여자들은 아직도 거기에 사람이 앉아있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여자들이 가까이 왔을 때 미앙생이 눈길은 엉뚱한 곳을 향한 채 흐흠 헛기침을 했다. 여기까지 따라오는 것을 보면 분명 대물을 찾아온 여자들이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난 당신들을 아주 쉬운 여자로 보고 있소, 하고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여자들로 하여금 거기에 사내가 앉아있다는 걸 미리 눈치를 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어머, 여기에 웬 처사님이 계셨네요? 이 길이 소일암으로 가는 길이 맞는가요?”

그 중의 한 여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물었다.

“소일암 가는 길이 맞기는 합니다만, 아무도 없는 그곳엔 무슨 일로 가십니까?”

“아무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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