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해외 어학연수의 허와 실
대학생 해외 어학연수의 허와 실
  • 최희섭
  • 승인 2005.10.23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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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일을 기준으로 외국에서 어학연수 중인 우리 나라 사람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팔만 일천 명이 넘는다. 이들을 좀더 세분하면 영어권에 오만 오천여명, 일본어권에 칠천여명, 중국어권에 일만 사천여명이다. 어학연수를 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선택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영어가 거의 삼분지 이를 차지한다. 이 숫자는 단지 어학연수를 하는 학생들의 경우이다. 대학원이나 대학에 다니는 사람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자그마치 십팔만 칠천명이 넘는다. 이 숫자는 합법적인 허가를 받고 학습을 위해 해외로 나간 경우만을 계산한 것이다. 여기에 관광 비자를 발급받아 출국하여 장기체류하면서 실제로는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그 숫자가 얼마가 될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나가면서까지 외국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가? 요즘의 젊은이들은 일년이나 이년을 허비해도 좋을 만큼 인생의 길이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년이나 이년을 어학능력습득에 투자하는 것이 남은 인생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암담한 현실에서의 마땅한 돌파구가 없기 때문에 현실도피의 한 방법으로 어학연수를 선택하고 있는가? 어학능력의 습득이 일년이나 이년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칠만큼 가치가 있는가?

 대학에서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막대한 금전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외어학연수를 나가는 것은 그에 대한 어떤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거나 현실에서 마땅한 도피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국내 취업시장에서 보듯이 대학 졸업이라는 말이 그대로 실업자가 된다는 말로 여겨지는 현실에서는 후자와 같이 생각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두려워하여 대학에서 삼학년 재학 중이나 사학년 재학 중에 일년이나 이년을 휴학하고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다. 위에 제시된 팔만 일천여명의 해외 어학연수생 중에서 적어도 칠만명 이상이 대학의 휴학생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오면 그들의 어학실력이 대단히 향상되고, 취업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각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들은 이들이 도피성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믿는다. 국내에서 실시하는 토익시험의 성적을 못믿을 정도로 취업 희망자들의 시험 성적이 우수한 판에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들의 외국어 실력이 매우 향상되었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은 인사담당자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들이 대학 재학 중에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동기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도피성 해외 어학연수인지 아닌지를 쉽게 구별하고 도피성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온 경우에는 일단 국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이 아닐 경우에도 졸업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판단하며, 졸업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 판단을 받는 지원자에게 내려지는 판정에 대하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은 취업 재수생이니 삼수생이니 하는 이름으로 대학도서관을 전전한다. 현실이 이러할 진대 막대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구태여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올 필요가 있을까? 외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적과 영화, 또는 테이프를 이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외국에 나가서 오직 하나의 외국어만 배우고 익히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전공공부를 하는 것이 취업에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기억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외 어학연수를 하는 정도의 노력을 여기에서 기울여 외국어 책을 읽고 전공서적을 탐독하면 보다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주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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