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월드뮤직’ 가능성을 위하여
소리, ‘월드뮤직’ 가능성을 위하여
  • 곽병창
  • 승인 2005.10.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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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지난 주에 호주대사관과 한호문화교류협회가 주최한 사이몬 바커 째즈쿼텟의 공연이 열렸다. 우리 판소리꾼, 타악 연주자 등과 어우러져 즉흥연주를 하기도 하고, 자신들 앨범의 대표곡을 연주하기도 하면서 90분을 알차게 채운 자그마한 공연이었다. 작년 소리축제 무대에 올랐던 시애틀의 이안 라쉬킨과 장문희의 판소리+째즈 공연을 포함해서 이런 만남은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그만큼 우리 음악 특히 판소리나 풍물 장단이 재즈적 특성, 즉흥적 변주능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연주는 시종 진지한 가운데 별로 흐트러짐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연주자들 각자가 낯선 음악에 대한 경계보다는 호기심으로, 그 이질적인 선율과 리듬의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동질적인 요소를 발견해 가면서 충분히 심취하고 몰입해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채굿’ 같은 고난이도의 풍물 장단에 드럼과 트럼펫이 완벽하게 동화해서 하나가 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른바 ‘협률’의 정수인 듯 느껴질 정도였다. 사이몬 바커 일행과 판소리꾼이 연주한 마지막 무대는 ‘암행어사 출도’ 대목이었다. 소리꾼이 ‘나발을 흥앵흥앵-’하고 비성(鼻聲)을 잔뜩 섞어 소리를 내면, 트럼펫이 그 뒷장단을 놓치지 않고 받아서 ‘흥앵흥앵-’ 한다. 어림짐작으로 객석의 반은 한국사람 반은 호주사람인 듯한데, 자막 하나 없이도 이 대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탄성을 질러댄다. 번역된 자막까지 곁들여지면 참 좋겠다 싶은데, 정서가 소통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공연 뒤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이미 여러 해 전에 전주에도 다녀갔으며 소리축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새삼 놀랐다. 또한 일면식도 없는 소리축제의 총감독을 수소문해서 초청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그들 대사관의 정보력과 진취적인 태도에도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특히 주(州) 단위로 예술가들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홍보를 연중 일상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그들 예술가들의 해외 공연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나라이다. 이처럼 예술의 국제교류에 관한 넓은 안목과 시야,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포용력 등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예술을 발전시키고 그 범주를 넓혀 가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축제가 표방하고 있는 바는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소리의 소통, 교류, 확산이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 교류, 확산을 위해서는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거리감을 씻을 수 있어야 한다. 판소리가 진정으로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넓은 음악의 바다 속에서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뽐내야 한다. 예술의 생명은 두 말 할 것 없이 독창성,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보편성의 획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리축제는 더욱 다양하고 이질적인 음악들과 판소리를 한 자리에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WOMAD 축제 등이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월드뮤직’의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전 세계의 토속음악들이 모여 그 미래를 이야기하고 함께 개척해 온 월드뮤직의 영역은 실로 무궁무진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월드뮤직의 기획자 아티스트들은 그 나름의 광범위한 네트?을 구축해 두고 있다. 우리 소리는 이들 ‘월드뮤직’의 큰 바다에서 짧은 시간 안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판소리가 자랑하고 있는 한, 신명, 해학 등의 독특한 미감이, 전 세계인을 사로잡아서, 그들이 우리 고장의 이 희한한 축제에 동참하게 하는 날도 그를 통해서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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