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속으로의 시간여행
‘아리랑’속으로의 시간여행
  • 송영석기자
  • 승인 2005.11.03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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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말로 김제 들녘을 ‘징게맹게 외배미’라 부른다.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김제와 만경을 채운 논들은 모두 한 배미로 연결돼 있다는 뜻. 그만큼 넓다는 얘기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 김제. 넓은 들은 지금도 전국 최고급의 알곡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많은 곡식들을 일구어 낸 김제는 아픔을 가진 땅이기도 하다.

 넓은 들의 풍요로운 곡식이 오히려 궁핍을 만들어 냈다. 양반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일본이 우리 땅을 점령한 후에는 입에 넣을 양식까지 수탈 당했던 사람들. 김제 들녘에서 거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빼앗기는 데 익숙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소작인들이었다. 그런 김제 들녘은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로 돌아가면 이 땅에서 벌어진 농지와 식량수탈의 태반은 바로 이 곳을 무대로 이루어졌다. 호남선 경부선 같은 철로가 놓일 때, 일제가 굳이 호남선에서부터 항만 군산까지 지선을 놓았던 것도 바로 너른 호남 평야의 곡물을 싣고 나가기 위한 수작이었다.

 절실했던 기쁨이나 절박했던 아픔은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되어 역사에 아로새겨지게 마련이다.

 이런 김제를 배경으로 민족 수난과 투쟁의 현장들을 두루 담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김제를 주 무대로 한 이 책에는 넓은 평야에서 겪어야만 했던 김제 농민들의 아픔이 절절히 담겨있다.

 일제는 이미 1903년부터 이곳에서 침탈을 시작했고, 이곳의 착취는 해방될 때까지 가장 극심했다. 그래서 소설 ‘아리’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아리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김제 내촌 외리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살아남기 위해 하와이, 만주, 북간도, 서간도, 연해주, 아시아 및 중앙아시아로 이사해야 했던 조선 민중들을 대변한다.

 ‘36년 동안 죽어간 민족의 수가 400만. 200자 원고지 1만 8천매를 쓴다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자수는 고작 300여 만자.’라고 스스로 이 곳에 대한 안타까움을 적은 조정래 문학관에서의 글귀는 김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 속 아리랑의 실제 배경지는 김제 지역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다. 만경의 너른 평야와 쌀 수탈을 위해 일제가 조성한 신작로, 당시 수탈 사무실이었던 죽산에 위치한 하시모토 농장사무실 등.

 아름답지만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채 오늘도 묵묵히 펼쳐져 있는 김제. 이번 주말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소설 속 주인공이 돼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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