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소설속 배경
[가볼만한 곳] 소설속 배경
  • 강웅철 기자
  • 승인 2005.11.03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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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문학관과 문학비(김제시 부량면)

 소설 아리랑과 작가 조정래의 문학세계를 만나려면 벽골제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리랑 문학관을 찾으면 된다. 벽제 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세워진 문학관에 들어 서면 아리랑에서 묘사된 민초들의 땀과 눈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제1 전시실앞에는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육필 원고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전시실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험난한 이주사가 각 부의 줄거리와 함께 시각자료와 영상자료로 전시돼 있다.

 2층으로 올라 가는 계단 벽면에는 작가가 아리랑을 쓰기 위해 여행했던 기록과 스케치가 전시돼 있어 작가의 정열과 혼을 실감할 수 있다. 제2 전시실엔 작가가 매일 집필 계획을 세우고 진척상황을 기록한 달력과 일기가 전시돼 있으며, 작가 개인의 신변에 초점을 맞춘 제3 전시실에서는 인간 조정래의 소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문학관을 나서면 길 양편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소설 아리랑 김제에서 잉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된다.

 벽골제에는 아리랑 문학비가 자리해 아리랑의 기념비적인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다. 글씨는 여초 김응현이 썼다.

 ◆금산사(김제시 금산면)

 1905년 일제가 을사오적을 앞세워 강제로 한일협약 조인을 하게 되면서 백성들의 원성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이에 금산사 미륵불도 비분강개해 통곡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백성들이 금산사에 모여 들고 의병 활동에 불씨를 당기게 된다.

 이처럼 ‘아리랑’속에서 금산사와 미륵불은 나라 잃은 백성들을 울분을 결집시키는 정신적 터전으로 등장해 소설 전개에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작가 조정래도 미륵신앙의 근본도장인 금산사의 종교적 가치에 항일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전북의 영산인 모악산 기슭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됐으며, 신라 경덕왕 21년(76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33척의 미륵불상을 모시고 중창을 하면서 호남 제일의 가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내에는 국보 62호인 미륵전과 대적광전·대장전을 비롯한 보물 8점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역사·문화의 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특히 가을 정취가 무르익어 가면서 경내로 통하는 산책길변 아름드리 나무들은 단풍이 들기 시작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김제시 죽산면)

 소설 ‘아리랑’ 속에서 하시모토는 유일한 실존 인물. 하시모토는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통역관을 맡은 공로를 인정받아 20대 후반에 권력을 등에 엎고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는 토지를 마구잡이로 사들여 죽산면 절반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며 후에 김제읍장,농장조합장,도의원 등을 역임하게 된다.

 일제시대 전북도내 일본인 대농장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9개소로 이 가운데 죽산면 서포리의 개간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하시모토 농장도 포함, 수탈의 상징이 돼 왔다.

 소설속에서 죽산면의 어른 신세호 선생이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대표격으로 농민 투쟁을 이끌자 하시모토는 소작농을 군대조직체계로 전환, 소작쟁의를 조직화하고 징용을 일선 지휘한다.

 현재 죽산면 소재지 인근에 고즈넉히 자리한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1호로 등재돼 있지만 과거의 위세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상당수 인근 주민들조차 이 곳이 어떤 건물이었는지 모르고 있고, 사무실의 부속 가옥은 흉가를 방불케 해 역사의 부침을 실감케 하고 있다.

 ◆김제 향교(김제시 교동)

 김제시내 복판에 자리한 김제 향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이다.

 소설 속에서 김제 향교는 의병으로 나선 송수익과 임병서가 의병봉기를 모의하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던 역사적인 장소로 등장한다.

 현재 이 곳에는 공자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이 들어서 있으며,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여러 성현과 유학자들이 모셔져 있다. 또 대성전 좌우에는 좌우에 동무와 서무라는 두 건물이 위치,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을 모셨다.

 김제향교는 태종(1400∼1418)때 세워졌다가 정유재란때 건물이 모두 불타 인조 13년(1635년)에 다시 지어졌다.매년 봄·가을에는 이곳에서 석전대제가 열린다.

 가을을 맞아 대성전앞에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노랗게 얼굴을 물들이고 있고 뒷편 동산에는 노송들이 푸르른 자태를 뽐내고 있어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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