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의 명언
볼테르의 명언
  • 김진
  • 승인 2005.11.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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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가며 어떠한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권위를 존중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마음으로 동조하고 지지하는 집단에 따라서 여러 권위가 존재한다.

  즉 권위의 근거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대상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개인이 자의적인 윤리적 통찰로서 긍정적인 가치를 깨닫고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인위적수단도 있다.

  예를 들어 판·검사가 입는 법복이나 왕관, 또는 장군에게 지급되는 장성도나 대통령의 휘장으로 사용하는 봉황과 같은 심벌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정당성을 획득한 권력에 주어지는 권위는 인간을 복종시키는 힘과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제도로서 확립된 권위는 실질적 가치를 떠나서 사회전반에서 통용되는 것이다.

  * 사회적 권위

  우리나라의 헌법은 1948년 이후 9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이에 비해 미국의 헌법은 1787년에 전문과 본문7조로 제정한 이래 218년 동안 25조에 이르는 수정조항만 가해졌을 뿐 단 한차례의 개헌도 없었다.

  개헌을 하면 나쁘고 안해야 좋다는 말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것은 힘과 권위를 가진다>는 관점에서 시간이 가지는 가치를 논하고자 예를 든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했을 때 따르는 권위에 대한 예는 영국의 근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왕실이나 상류층 자제들만이 다니는 학교인 이튼스쿨은 또다른 명예를 가지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이튼스쿨 출신의 한 학급 모두가 전쟁터에서 전원 사망했다는 것이다.

 귀한가문의 출신이지만 자신들에게 다가온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그들의 명예는 가히 최고의 명문임을 내세울 만 하다.

  * 갈릴레이의 두 가지 권위

  타인의 주장을 막거나 비난하여 잘못된 예는 많겠지만 널리 알려진 사례를 보자.

  16l6년 교황청은 정식으로 지동설을 금지하고 갈릴레이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그 후 갈릴레이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던 오르바누스 8세가 교황으로 즉위하게 되자,

  교황청으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가설로서만 서술한다면 출판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천문대화> 라는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 책은 표면상 천동설을 지지할 뿐 실질은 지동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연금 상태에서 생을 마친 갈릴레이에게 교황청에서는 장례를 지내는 것은 물론, 묘비를 세우는 것조차도 금지하였다.

  그로부터 359년만인 1992년10월31일, 로마교황청은 1633년6월22일의 종교재판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이의 완전복권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갈릴레이는 학자로서의 학술적 권위와 함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신념까지도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이 교훈은 타인의 주장을 막아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혀서도 안 된다는 두 가지를 함께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방폐장의 군산지역 유치를 두고 시행되었던 주민투표가 84.4%라는 높은 찬성률을 보였지만 안타깝게 탈락한 이후 누구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방폐장과 관련한 <부안사태> 이후에 또다시 지역여론이 갈리고 있으니 퍽 우려할 일이다.

  하지만 누가 어떠한 선택을 하였든 주민으로서 자신의 선택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젠 서로를 향한 비난과 원망을 접고 <볼테르의 명언>을 되새겨 봤으면 싶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 할 자유를 위해서 함께 싸우겠습니다.’라는 것이다. 타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타인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아가며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나의 권리가 타인으로 인해 침탈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희대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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