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파워] ①가정내 커지는 여성 목소리
[우먼파워] ①가정내 커지는 여성 목소리
  • 김효정기자
  • 승인 2005.11.17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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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때문에…" 무조건 희생 NO!
 3년차 남자전업주부로 가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조모씨(38·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유치원생 아들을 둔 그는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를 그만 두고 가정에서 살림하며 아내와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다.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 빨래, 설겆이 등 가사 활동은 물론이고 아내 출근과 아들 유치원 통학 준비도 그의 몫이다.

 조씨는 “결혼 초 맞벌이 부부였을 때는 아내와 가사분담을 했었고 회사를 그만 둔 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사일을 전담하게 됐다”며 “남자가 집안일 한다고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도 있지만 가사 노동도 엄연한 노동으로 인정될 만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남성이 가장으로 군림(?)하던 전통적 가정의 퇴조와 함께 남녀 성 역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가정 풍속도의 변화도 가속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가정내 우먼파워와 비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혼인·이혼 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이혼의 주된 사유가 성격차이(49.4%), 경제문제(14.7%), 가족간 불화(10.0%)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여성들이 남성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권리를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식 때문에…’ ‘주위의 따거운 시선 때문에’ 등의 이유로 온갖 불만을 혼자 삭히며 가정을 지켜 온 전통적 여성상은 이제 크게 줄어들었다.

 황모씨(39)는 결혼 10년차 주부. 그러나 대학까지 졸업한 남편은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직장을 갖지 않고 집안에서 놀고 먹는다. 할 수 없이 친정의 도움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던 중 남편은 사업을 하겠다며 친정에서 자금을 빌려오라고 황씨를 괴롭혔다.

 더 이상 남편의 무능력과 횡포를 참을 수 없었던 황씨는 결국 이혼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은 ‘혼인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된다’며 황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결혼 3년차 김모씨(31)는 결혼 초부터 남편과 성격차로 다툼이 잦았다. 남편은 그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달려가 싸움 내용을 일일이 고자질했고 이로 인해 가족간의 불화가 커졌다. 김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 사유가 인정 돼 지난해 결국 이혼했다.

 이렇듯 먼저 이혼을 결정한 여성들은 가정내 불화와 문제점들을 그대로 떠안고 살아가기 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가정내 변화로 여성의 입지가 과거 어느때 보다 높아졌지만 아직도 ‘여성’이란 이름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에는 더욱 많은 노력과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 전정희 소장은 “ 현재 사회에서 여권신장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나 다소 과장되게 표출된 부분들이 많아 이로 인해 남성들의 역차별, 위기의식 등이 팽배해져 여성들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한다”며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도 여성들의 의식은 향상된 반면, 남성들은 매우 더딘 편이며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혼율도 이러한 의식격차의 심화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계층별 맞춤 교육을 통해 사회 지도층으로 고급 여성인력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후세대에게 지도자로서의 모델제시와 자기발전가능성,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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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강사 박진숙씨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아가 원하는 길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소위 ‘보따리 장사꾼’인 박진숙(40·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씨는 현재 도내 5개 대학과 광주 1개 대학 등 총 여섯군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수업시간은 주 28시간. 남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전주와 광주를 오가며 학생들에게 ‘교육행정학’을 가르치는 일은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한 주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점심을 오가는 차 속에서 때울 정도로 바쁜 시간들이지만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다”는 박씨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3년만에 그만두고 육아와 가사일을 병행하며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 부도로 가정 형편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단순히 공부가 좋아 시작했던 대학원 과정은 생활의 필요조건이 됐다.

 박씨는 “박사논문을 쓰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며 “경제적 형편도 어려워지고 아이 셋의 양육도 문제가 되면서 힘든 시기였지만 다시 일어나 대학의 시간강사를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이 지났다”고 말한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교육자의 길이 이제는 천직이 됐지만 주부, 엄마, 아내라는 이름앞에 ‘박진숙’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었다.

  그동안 가사일과 육아에 전혀 신경을 안쓰던 남편도 이제는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도 더욱 각별해졌다고.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길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웃집 언니나 누나 같은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그는 바쁜 와중에도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에서 무보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전북의 여성으로서 도내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

 “나는 교육자이고 내가 이 곳에서 하는 일도 여성들의 잠재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협력자로서의 역할이다”며 “학생들에게는 행복한 강의를 통해 꿈을 키워주고, 여성들에게는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봉사자가 되도록 노력 할 생각”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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