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찬가(讚歌)
상록수 찬가(讚歌)
  • 전성군
  • 승인 2005.11.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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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근본이 바로서야 길이 열린다(本立而道生)는 말이 있다. 지역 언론의 역할과 실천은 지역성과 지역도민의 근본이 무엇이냐 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이 바로 정체성(正體性)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북의 지역성과 전북도민의 정체성(본디의 참모습)을 지키기 위해 상록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전북도민일보의 17주년 열정에 대해 그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본래 심훈의 상록수 이야기 속에는 영신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영신은 아주 의지적인 여성이고 여성계몽 운동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또 영신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동혁이라는 사람도 농촌계몽운동가의 한 사람이다.

 특히 영신이 청석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목은 감명이 깊다. 예컨대 일본 상부에서 영신에게 아이들을 80명 정원을 넘기지 못하도록 명령했을 때이다. 당시 배우고 있었던 아이들은 13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영신은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는데,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유리창 밖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영신은 칠판을 떼어내어 유리창 쪽으로 옮겨 놓고 수업을 했다고 한다. 진정 아이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배우고자 열망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라 없는 설움과 압박과 곤궁 속에서 여러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들었던 심훈의 '상록수'는 지금도 인기가 있는 도서이다. 그런 상록수사랑을 회상하면서 오늘을 생각해본다.

 요즘 웰빙(Wellbing)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다. 개인적으로 병 없이 속 편하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와 사회적으로 이웃 혹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명부양'은 누구나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요 핵심적 심성구조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는 이웃과 사회와 자연과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자신을 고립시키고 생명을 파괴하는 불행한 세계관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최근 지나친 웰빙바람은 이기주의에 찌든 불행한 후기현대인들의 병리증상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상생'은 뒷전이다. 그만큼 오늘날 웰빙이 중용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당연히 웰빙시대를 즐겨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웰빙은 중용을 잃지 않는 상태에서 가능하다. 지나친 모든 것은 웰빙에 방해가 된다. 부자연스러운 과장과 왜곡이 중용을 잃게 하고 결국 행복의 적이 된다. 잘 먹고 잘사는 웰빙 추구를 위해서, 농약 없는 무공해의 좋은 식품을 생산하는 만큼 분수를 지키는 맑은 정신자세의 확립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상록수' 저자 심훈이 '옥중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 중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니보다도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져도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가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농촌이 있기까지는 '상록수'의 아픔이 있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이 시점에서 영신과 동혁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쩌면 이것이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상록수처럼 살아가다 보면 나를 맑아지게 하는 신문들을 만난다. 마치 비누 거품처럼 나를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그 지역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쉽지 않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도, 맑고 투명한 웃음을 지을 줄 알며, 사람에게 다가올 줄 알며, 사랑할 줄 아는 신문, 그런 신문을 만날 때 나는 정말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 간직할 줄 아는 전북도민일보를 기대하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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