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그 열망과 절망 사이
세계화, 그 열망과 절망 사이
  • 곽병창
  • 승인 2005.11.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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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관광, 문화상품 등의 화려한 유행어들 뒤에 ‘세계화’를 앞 다투어 붙이기 시작한 지 이제 제법 시간이 흘렀다. ‘전주세계소리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치른 것만도 2000년 가을의 pre-대회까지를 더하면, 벌써 여섯 번째가 지났다. ‘과연 얼마나 세계화하였느냐?’고, ‘해외 관광객이 얼마나 찾아오고 있느냐?’고 따져 묻고 질책하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은 세월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의 기대와 우려, 조급함과는 무관하게, 지금 당장 세계의 관광객이 얼마나 달려오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계축제라는 목표의 달성은, 아직 유보적이다. 그러나 이 충족되지 않은 열망이 축제 전체에 대한 섣부른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말아야 한다. 이 교묘한 주술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올해 소리축제의 평가단은, 올해의 전체 축제 참관인 중에서 도민의 비율이 80% , 외지인이 20%, 그 가운데 외국인은 0.5% 정도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1천여 명 정도의 표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95% 가량의 신뢰도를 갖는다. 소리의 전당을 직접 찾은 이른바 ‘진성’ 관람객이 연인원 15만 명 정도이니 줄잡아 3만 명 가량이 외지 관람객, 그 가운데 외국인은 750여 명인 셈이다. 데이터만으로 본다면, 타 지역 관람객의 증가는 상당히 괄목할 만한 수준이며, 외국인의 참여 또한 더디지만 늘어나고 있는 수준이다. 3만 명의 외지 관람객이 다녀 간 축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 ‘동네축제’, ‘동네잔치’라고 조롱하는 것은, 이른바 세계화를 위해서도, 명실상부한 ‘동네축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따지고 보면 ‘동네잔치’라는 표현은 참으로 소중한 말이다. 왜냐하면 소리축제야말로 그 어느 공연예술축제보다 먼저 ‘동네축제’의 모습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 조직위의 집행부는 바로 이 점에 큰 비중을 두고, 2004년-2005년 축제의 목표를 축제의 안정화, 도민 신뢰의 회복에 두었다. 그리고 초창기 몇 년 동안의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지지와 신뢰를 보여 준 지역민들에 의해 올해의 축제는 비로소 축제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이른바 ‘세계화’에의 열망을 유보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6년 이후의 소리축제가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추구해야 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그렇다면 소리축제의 세계성은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세계적인 아티스트나 연주단을 초청하는 일은 소리의 전당의 기획팀이 일년 내 하는 일이고, 또 다른 지역의 축제나 문예회관들이 앞 다투어 하고 있는 일이다. 이런 방식의 동어반복으로 세계화가 달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단한 역설로 들릴지 모르지만, 전주소리축제가 세계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소리’를 둘러싸고 벌이는 기막힌 동네잔치의 모습을 명실상부하게 회복해야 한다. 전주가 소리의 고장일 수 있는 이유는 청중들의 기운에 있다. 청중들이 소리꾼을 둘러싸고 조성해내는 그 독특한 상호교감과 간섭의 열기가, 그 추임새의 아우라가 발현될 때에만 전주는 소리의 고장이 된다. 그러므로 해마다 일정시기가 되면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현상이, 바로 여기서, 소리를 둘러싸고, 벌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소재는 물론 판소리일 수도, 전 세계의 종족음악일 수도, 그를 바탕으로 한 전위적 노력일 수도 있다. 명창을 비롯한 목소리의 거장(master)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재의 다양함 못지않게 지역민의 열기가 세계화로의 큰 관건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리축제는 그 흔한 음악제나 예술제가 아닌, ‘소리축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세계’는 ‘전주소리축제’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전주가 소리로 진정한 축제의 도시가 될 때, 비로소 ‘세계축제’라는 이름도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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