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갈등을 이겨내는 상생(相生)의 정신
분열과 갈등을 이겨내는 상생(相生)의 정신
  • 김용재
  • 승인 2005.12.2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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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성인들은 우리 사회의 면모를 상화하택(上火下澤)으로 요약하였다. 교수신문이 최근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쓰는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였다. 주역에 나오는 이 한자성어는 '위에는 불, 아래는 못‘이라는 뜻으로, 서로 분열하고 이반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끊임없는 정쟁과 행정복합도시를 둘러싼 헌법소원문제나 지역과 이념 갈등 등,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수들은 사회 양극화 문제가 더욱 불거지고 사회지도자층 인사들의 위선이 어느 해보다 많이 드러났음을 지적하여 양두구육(羊頭狗肉:양머리고기를 대문에 달아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이나 정제되지 못한 언어가 난무한 모습을 빗댄 설망어검(舌芒於劍:’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뜻)을 들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취모멱자(吹毛覓疵:살갗의 털을 뒤져서 흠집을 찾아냄), 노이무공(勞而無功:힘을 써도 공이 없이 헛수고만 함)도 뽑아 우리 사회의 어둠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들 단어들은 하나같이 분열, 갈등, 위선, 이반, 허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생산적이고 답답한 사회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연말만 되면 반성과 회한, 부정적 이미지가 부각되는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우리 지역사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끊임없는 논쟁의 회오리에 싸여있는 새만금 사업이나 혁신도시 부지 선정을 둘러싼 지자체간의 반목과 정쟁, 쌀협상 비준안의 국회 통과로 더욱 피폐해진 농민들의 삶의 양태나 비정규직 법안 문제로 불거진 노사간 분쟁 등 어느 하나 속 시원한 답이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도농간, 사회 계층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우리 사회의 따뜻한 면이 곳곳에서 훈훈한 미담으로 전달되기도 하였다. 폭설 피해 주민들을 위한 복구에 너나없이 나서기도 하고, 노약자나 소년소녀 가장 돕기 바자회행사도 많았다. ‘나’보다 ‘우리’를 내세우는 공동체 문화 정신이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어둡고 답답한 사회를 밝게 가꾸는 희망의 불씨는 거대한 정책이나 사업보다 작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희망은 말 한 마디, 작지만 아름다운 행동 하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한옥마을에서 열린 작은 이벤트는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마음자리를 일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일요일 오후 2시부터 경기전 옆 최명희 문학관에서 문학관 건립을 앞두고 안택굿이 열렸다. 내년 봄이면 개관하는 이 문학관은 작지 않은 규모로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새로운 문화 운동의 거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혼불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던 이날의 안택굿 행사는 임실필봉농악과 함께 고천문 낭송과 대동굿 놀이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은 행사가 최명희 문학정신의 핵인 상생(相生)의 민족정신이 선양되는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대하소설 ‘혼불’에는 이 세상의 모든 인물은 의미 있는 존재로 부각된다. 갖은 자 뿐 아니라 낮은 자, 가난한 자 모두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존중, 순리에 순응하는 인간상 추구, 상생과 화해의 정신이 작품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상화하택으로 표명되는 세대간, 계급간, 지역간 갈등을 해소하는 정신은 무엇보다 최명희 문학에서 추구했던 한국적 정서와 화해의 정신이다. 이 작은 이벤트를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최명희 문학관’을 축으로 인간 존중, 화해와 순응, 상생의 사상이 우리 지역사회를 감동시키길 바랄 뿐이다. 이제 도시적 빠름보다 농촌에서 발양되는 여유, 부와 경쟁보다 나눔과 봉사, 속도 중시의 직선문화보다 인정 섞인 골목길 문화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최명희 문학정신이 그립기만 하다.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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