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의 차이
말과 글의 차이
  • 김진
  • 승인 2006.01.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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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 밖으로 나가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소리로 그해 일 년의 신수를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

 이를 청참이라고 하는데, 새해 첫 새벽에 치는 신수점을 말하는 것이다. 새해 처음 들려온 소리가 까치소리나 송아지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고,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거나 불행이 올 조짐이라 여겼다. 그리곤 이처럼 길하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귀를 씻어 액운을 멀리했다는 풍습이 전해온다.

 이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미물들이 전해주는 소리 하나에도 의미를 담고 정을 나눴는데, 근자에 와서는 fast문화의 대표 격인 무분별한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말씨가 날로 거칠어져 가는 것 같아 벽두부터 걱정이 크다.

 세밑의 한 주일 정도만 보더라도 <사학법>과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막말부터 부산고법 판사의 법정 증인심문 과정에서의 막말까지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사회적 환경이 말에 영향을 끼친다고는 하더라도 자신의 입을 열어 나오는 말을 어찌 시대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또 지난해에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이슈가 된 대상들이 총리, 장관, 국회의원, 부장판사, 사학재단의 이사장 등 사회의 핵심지도층이다 보니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좌절까지 느낄 지경이다. 모름지기, 자신의 말에 사회 공통적 가치관과 공인으로써의 자질, 그리고 품성을 모두 실어야 할 인사들이기에 국민들의 불신이 커져만 가는 것이다.

 나의 말로써 남들과 사회를 이롭게 이끌어야할 공인의 말 뽐 새들이 그렇다면, 필시 그들은 글과 말의 차이를 잘못 이해한 듯싶다.

 흔히들 글은 종이에 남고 말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글을 품은 종이는 삭고 찢어지지만, 듣는 이의 마음에 새겨진 말은 평생을 가도 지울 수가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구두를 신고 대리석 바닥을 걸어 보았을 것이다.

 딱 딱 딱 딱 따악 딱… 소리는 내 발걸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걷지 않는 이외의 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도 그렇다.

 내가 품고 있는 생각, 상대에 대한 배려, 세상이 인정하는 이치, 표현하고픈 의지, 그리고 기대하는 바람과 이어가는 꿈까지도, 모두가 말에 담겨있다.

 법구경을 보면 내 손에 상처가 없으면 독을 만져도 독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고 했다. 나의 말이 정화되고 순화되어 있다면 누구도 말로서 나를 해하진 못한다.

 말은 단순히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표현의 수단만은 아니다. 같은 의미일지라도, 말에는 나를 대신할 수 있는 권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권위는 수동태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타인으로부터 검증받고, 인정받을 때만이 권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덮씌워진 허울에 의지하여 위협적인 언사로 권위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권위는 허울을 벗는 순간 함께 벗겨진다는 것은 모를 리가 없는 얘기다.

 새해다. 병술년 새해에는 막말이 정치권이나 사회의 유행어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경희대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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