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백제정서 집약 '삶의 노래'
① 백제정서 집약 '삶의 노래'
  • 이동희
  • 승인 2006.01.09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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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학사를 빛낸 수많은 명시들은 지금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쉬며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이동희(60) 시인이 이러한 명시들을 통해 그 감동을 다시한번 전한다. 매 주 1회에 걸쳐 명시 한편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단상을 함께 이야기한다.

 백제의 정서를 집약한 삶의 노래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멀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자에 가 계신가요?

 어기야 진 데를 디디올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기야 내 가는 데 저물을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행상인의 아내「정읍사(井邑詞)」전문

 

 가장 절절했던 민초의 노래가 천년을 건너오면 어떤 음색으로 역사를 증언할 것인가? 가장 간절했던 마음의 소리가 만년을 지나오면 어떤 표정으로 시절을 규정할 할 것인가? 자못 궁금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정읍사’가 있어 다행이다.

 ‘정읍사’는 백제가 그 찬연했던 역사를 소실 당하던 불구덩이에서 소멸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살아남은 토기이거나 기왓장 조각이다. 아니 흔들어 깨워야 겨우 일어나서 시든 증언이나 하는 박물의 화석이 아니다. 잠든 영혼에 사랑의 본질을 일깨우는 절창이거나, 사랑 건망증에 중독 된 대중들의 가슴에 사랑 끼를 불 지르는 불씨여야 마땅하다.

 사람들은 흔히 한편의 노래에서 의미맥락을 추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노래의 근본은 의미에 있지 않고 서정의 표출에 있다. ‘흥겨움’이랄까, ‘신명남’이랄까, ‘짓거리’랄까, 무엇으로 불러도 그만인 감정의 일렁거림이자,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노래가 지닌 근본 의무이자 본색이다. 의미맥락은 그 다음에 챙겨도 그만이오, 내용은 없어도 그만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어 일색인 오페라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의미가 소통되지 못해서 음악의 아름다움에 무감하지 않다. 노랫말은 비록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프리마돈나가 애절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감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

 정읍사의 백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감 어린 여흥구에 있다. 이 구절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후렴구’라고 소홀히 여기거나 하찮게 지나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읍사의 백미는 바로 이 ‘흥겨움-신명남-짓거리’의 절정인, 이 후렴구에 집약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노래의 참맛을 볼 수 없다.

 가장 절박한 상태에서도 어쩌면 그렇게도 감칠맛 나는 탄성(어기야 어강됴리)을 자아낼 수 있을까? 좌불안석 애가 타는 염려 속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맛깔스러운 감탄(아으 다롱디리)으로 짐짓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그렇다! 바로 애간장을 태우는 노심(勞心)과 초사(焦思)의 절절함도 ‘어기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흥을 일으키고 신명을 불러오는 짓거리를 통해서, 염려와 걱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천년 전 백제 여인도, 만년 후 백제 후손도, 그렇게 인생을 노래하며,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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