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와 세대론
‘58년 개띠’와 세대론
  • 김용재
  • 승인 2006.01.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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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戊戌年)이 밝았다. 개띠의 해이다. 개의 해인만큼 연초부터 개와 얽힌 이야기가 숱하게 회자되었다. 특히 ‘58년 개띠’에 담긴 회고는 2000년대를 사는 우리 사회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왜 하필 개띠의 대명사는 1958년생일까. 70년 개띠나 46년 개띠도 있고, ‘59년 돼지띠’나 ‘57년 닭띠’도 있는데 유독 ‘58년 개띠’가 고유어처럼 문화기호로 작용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무술년 새해 환갑을 맞은 46년생보다 58년 개띠는 유독 주목을 받았다. <이 시대의 화두, 58 개띠에게 축배를>이 등장하는가 하면, <58년 개띠>라는 시집이 다시 조명받기도 했다.

 개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다. 그러하니 58년 개띠는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친밀감이 배어있을까.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흔히 58년 개띠는 6?25전쟁 후 베이비붐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시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대학에 입학한 77년은 사상 최고의 대학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 말이 연유한 것이 아닌지 짐작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57년에서 59년까지 매년 100만명 정도의 신생아가 태어났다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그보다 좀더 ‘58년 개띠’가 문화기호로 정착한 원인으로 꽤 일리 있는 설이 있다. 이들은 고입 뺑뺑이 1호이다. 1974년 정부의 고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서울 지역을 비롯한 대도시부터 고교별 입시가 사라지고 추첨으로 입학하게 된다. 여기에 58년 개띠의 ‘상처’가 있다. 운 좋게 명문고에 추첨 배당을 받은 학생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선배들로부터 ‘뺑뺑이’라고 무시당하고 졸업 후 동문 모임에서도 배척되었다. 얄미운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들은 또한 이 고교 평준화가 대통령 아들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어찌 정부의 정책이 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만, 참으로 근거 없는 이상한 풍문은 진실처럼 퍼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권력의 풍문과 정책의 결합, 여기에 베이비붐과 대학의 경쟁률이 조합되어 58년 개띠는 주목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 시기엔 대학 4년이거나 군에 가 있었기에 데모 대열에서 이탈되어 386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후배들에도 끼지 못하는 시련(?)을 겪는다. 후배들로부터 ‘구세대’나 ‘어중간하고 줏대 없는 선배’로 매도당한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에 끼지 못하는 어중간한 세대의 우울한 표상이다. 소설가 박상우도 “앞 세대는 분명 우리와 달랐고, 뒤 세대 역시 부담이어서 어디에 흔쾌히 섞이지 못한 게 58년생”이고 “선배들에겐 ‘뺑뺑이’로, 후배들에겐 ‘줏대 없는 선배’로 손가락질 받으면서, 그것이 ‘개’에 대한 우리의 묘한 정서와 맞물려서 ‘58년 개띠’라는 특화된 이름을 달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짐작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58년 개띠’의 표상은 참으로 우울하다. 샌드위치 세대요, 암울한 세대 논쟁의 핵심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세대일수록 강한 동류의식이나 다른 연배보다 독립성이 강하고 창의적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가난과 유신 독재를 거치면서 ‘낀 세대’의 어정쩡한 위치를 극복하고 나름대로 자기 개발을 착실히 한 세대이기도 하다. ‘58년 개띠’는 지금 4-50대들의 회한인가? 아직도 똑같은 세대 논쟁은 말잔치 속에 풍성하다. 30대에 있는 학력고사 세대와 수능 세대의 인식 차이나 20대에 있는 X세대, N세대, M세대로 이어지는 신세대 논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엔 끝없이 세대간의 갈등이 있고 그 배후에는 각종 교육정책이나 사회 분위기가 있다.

 ‘58년 개띠’는 세대 논쟁의 핵심어이다. 오늘날에도 이 말은 계속 유효하다. 올해에도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세대 표현기호가 또 나타날 것이다. ‘58년 개띠’라는 세대 표현을 점검하면서 소설 <개>(김훈)에서 진돗개 ‘보리’가 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출렁인다.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우리도 ‘보리’처럼 이 세상을 굳건히 지키면서 힘차게 살아야 한다. 어떠한 정책이 등장하든, 무슨 갈등이 있든 당차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세대 논쟁도 즐거운 언어유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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