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시인에게 보내는 답장
박남준 시인에게 보내는 답장
  • 진봉헌
  • 승인 2006.01.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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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홍지서림에 들렸다가 그대의 신작 시집 <적막>을 발견하고 오랜 친구로부터 온 반가운 편지를 받은 듯 마음에 설렘이 가득하였소. 지난 12월 전주흥사단 금요강좌에 초청해 놓고 정작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여 상면하지도 못하고 강의도 듣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반가움은 더 컸지. 망설이지 않고 시집을 집어든 나는 카운터에 계산을 하고 가지고 나와 집에 도착 하자마자 정신없이 읽었네. 영혼이 흔들리는 듯한 격렬한 감흥이 지나가고, 인간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잔함이 쓸쓸함과 함께 물결치며 내 마음에 끝없이 파문을 일으켰네.

 일면식도 없는 그대와 내가 이처럼 시를 통하여 정서적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의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시인의 덕분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되겠네.

 그대의 문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그대의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흥을 지금도 잊지 못하네.

 4~5년 전 나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충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노순일 변호사로부터 전주에 갈 일이 있는데 박남준 시인을 꼭 한번 만나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수소문하면서 그대의 이름을 처음 들었지. 누구 길래 라는 호기심과 함께 같은 지역에 살면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그대의 시집을 모두 사서 읽었지. 그대의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를 읽으면서 막다른 골목에까지 ?긴 듯한 절망, 천 길 낭떠러지에 서있는 듯한 낭패감, 깊은 바다의 심연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듯한 고독과 고립이 너무나 생생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네.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지. 마술처럼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거야.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누군가와 정서적 공감이 된다면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된다는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대를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에 버금가는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뿌리 채 뽑혀 부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 인간의 삶이 가지는 근원적인 비애가 그처럼 처절하게 표현되는 것을 두보 이래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나의 과문 탓 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의 본질적 요소인 운율에 있어서도 그대의 격정적이면서도 감칠맛 나는 호흡은 당대의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네.

 신작 <적막>에서는 오래 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환자가 병색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듯한 경쾌함이 느껴지네. 경쾌함이 앞으로 경박함이 될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장인의 원숙함이 될지 모르겠네.

 다만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얻은 경험에 의하면, 내일은 알 수 없지만, 내일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내일은 알 수 있네. 그대를 믿네. “기다려온 것들은 모여서 꽃을 피우는 것일까 견딜 수 없는 그리움들이 밀려가 쌓이는 곳 한때 나는 사랑을 잃고 쓰러진 별들이 떨어져 섬이 되었다 여겼지 제 몸속의 불덩이를 식히려고 별들은 절명처럼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이라 여겼지…” (그 섬, 오름 속에 일어선다)라는 절창을 부르는 그대 아닌가.

 그리고 그대가 더 위대한 시인이 되기를 바라네. “굽이굽이 한걸음 또 한걸음 넘고 넘어 나가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고 새들이 사는 숲에 들면 새들의 노래를 듣겠네 참회의 마음으로 걸어가네 병든 들녘, 신음하는 산천 껴안으며 깊이 고개 숙이고 가네…”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 라는 그대의 시처럼,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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