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쪽박예산, 대박 영화 ‘왕의 남자’
② 쪽박예산, 대박 영화 ‘왕의 남자’
  • 이원희
  • 승인 2006.02.02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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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한 달 남짓인 영화 ‘왕의 남자’가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 기록적인 일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될 사극의 형식임에도 고작 41억 원으로 그 기록을 낳았다니 혀를 내두를 일이다. ‘킹콩’이 2천억 이상을, 우리 영화 ‘태풍’은 100억 원대의 돈을 투자했다. 이들 영화에 비해 턱없이 낮은 예산으로 만든 ‘왕의 남자’가 고예산의 영화들을 뒷전에 놓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연일 팡파르를 울린다. 이유가 있을 법하다.

 영화의 원작인 연극 ‘이,爾’는 잘 나가는 영화 덕으로 연장 공연에 이미 발을 내딛었고, 이 달 말까지 예약석이 동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서울예술단에서는 뮤지컬로 제작하자고 러브콜도 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희곡집으로는 흔치 않은 1000부 이상이 팔려 낙양의 지가를 올렸고, 뮤직 비디오, 영화삽입음악(O.S.T)도 덩달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가히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문화컨텐츠 확장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과 물질의 마르크스적 자본논리를 넘어서 지식과 정보가 자본증식의 주력한 도구로 부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문화와 예술은 재능 있는 서글픈 예술인들의 물외(物外)의 고독한 작업이 아니다. 시쳇말로 한번 ‘뜨면’ 작품이 여러 가닥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우리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니 문화컨텐츠 하나 잘 개발만 하면 막대한 부의 창출은 저절로 찾아든다. 현재 ‘왕의 남자’가 바로 그 중심에서 파다한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숨은 마력이 있기에, 연극에서 영화로, 다시 뮤직비디오와 뮤지컬과 음반으로 얼굴을 바꾸면서 확대 재생산되며 다양한 변용을 가능케 하는 걸까. 쪽박의 예산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알 속 모른 그 속을 드려다 보면서 감춰진 코드를 풀어 가보자.

 영화는 역사적 사실인 연산과 장녹수의 관계를 따와, 현재적으로 재구한 이른바 ‘시대극’이다. 정통사극이 역사현실을 민감하게 포착한다면, 시대극은 단순히 역사의 한 구석을 소재로 취할 뿐, 영화세계는 허구적 상상력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사극과 다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같은 영화가 그렇다. 따라서 시대극은 시대적 풍물과 의상 등의 고증적인 사료를 제외하고는 스토리는 허구적 줄거리가 된다. 놀라울 일은 시대극이 사극보다 더 역사적일 수 있다는 점이고, 더욱 진실한 삶의 실존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대극이 사극보다 훨씬 판타스마에 기초하여 예술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왕의 남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광대들의 걸쭉한 육담이 풀어지는 소학지희와, 살판, 줄타기, 인형놀이, 농악 등 산대지희가 질펀하게 펼쳐진다. 비주얼 아트라는 기본정신을 십분 살릴 셈이다. 아울러 광대와 권력자와의 비대칭적 관계설정도 관객에게 야릇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맞춤하다. 칠득이와 팔복이의 특성 있는 캐릭터가 양념 노릇을 톡톡히 했고, ‘햄릿’의 경우처럼, 은폐된 진실을 찾기 위해 설정된 극중극 장면도 관객의 상상력을 흔든다. 그러나 주목되는 점은 남자인 왕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 문제적인 군주 연산, 슬픈 권력자의 뒷그림자에 있을 법한 또 하나의 삶을 천출 광대와의 관계로 설정해 동성애의 기미를 슬몃 엿보게 한다. 극중극을 통해 자신의 근원을 파괴한 자에 대한 복수의 칼과 광대 공길에게 향하는 연산의 연민 어린 시선이 교차하는 사랑과 복수의 이원적 코드랄지, 영화는 몇 가닥의 중심화제를 얽어놓아 상상력을 과다하게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밋밋하지 않게 설정된 스토리라인과 풍부한 볼거리, 권력 주변부에서 맴도는 속물인간이 광대의 놀음놀이에 의해 몰락하는 설정 등이 영화적 묘미를 주는 요인이다. ‘서편제’에 이어 민족예술의 진솔한 해학과 놀이, 역사에 대한 상상적인 접근방식, 이런 것들이 대박으로 키워낸 햇빛이다.

<극작가·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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