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처용가
④ 처용가
  • 이동희
  • 승인 2006.02.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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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밝은 달에

 밤 깊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

 빼앗긴 걸 어찌하리오. 

 -처용「처용가(處容歌)」전문 

  이 노래는 처용(신라. 헌강왕. 879년)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지어 부른 8구체 향가로 된 주술적 무가(巫歌)다. 처용이 밤나들이를 다녀와 보니 그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화를 내거나 복수하기는 고사하고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나갔다고 한다. 이에 역신이 뉘우치고 ‘처용의 형상만 그려져 있어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이로부터 백성들이 처용의 형상을 그린 부적(符籍)을 집에 붙여 역신을 쫓았다고 한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내용에 따라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이 노래가 함축하고 있는, 보다 의미 깊은 아름다움과 만나게 된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의 배경사상의 다양성에 대한 것이다. 처용가는 도교나 민간신앙-토속종교에서 행하는 부적이 쓰이게 된 근원 설화를 제공한다. 질병을 퍼뜨리는 역신(疫神)이 처용을 통해서 인간의 약점을 시험하여 함정에 빠뜨리려는 수작이 그것이다.

 이를 관대함으로 물리치는 처용의 마음 바탕은 이미 불성(佛性) 그 자체의 화신으로 볼 수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 보았자 유한한 인생, 썩어 없어질 몸뚱어리에 대한 집착을 흔연하게 털어낼 수 있는 처용이야말로 불자(佛者)될 사람의 귀감이요, 불성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악업의 근원인 탐(貪)·진(瞋)·치(癡)의 함정에서 일찌감치 빠져나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처신을 처용은 망설임 없이 수행하는 것이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노래의 중심 주제인 관용의 정신이다. 원수를 징벌하는 것이 세속인의 판단이요 처신이라면, 본디 내 것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내 것을 가지려고 집착하는 인간의 미망(迷妄)에 대한 통쾌한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 처용의 처신이다. 이 관용의 정신은 쓸데없는 욕망의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며, 낭비적인 삶의 소모를 방지하게 하며, 나는 물론 더 많은 민생이 (악귀나 질병으로부터)보호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셋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노래가 주술적 무가(巫歌)라는 점과 관련된 대중성이다. 우리네 토속-무속신앙이 삶의 안위와 관련하여 춤추고 노래 부르는 굿판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자생적 신앙행위였다. 그래서 대중-민초들은 그런 신앙행위를 통해서 수수께끼 같은 전생의 세계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고통스러운 현실의 아픔을 위무 받을 수 있었으며, 도무지 해소되지 않을 미래적 한(恨)의 바다도 건너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향가에 담긴 사랑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한 때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이 시중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별하면서, 이혼하면서, 애인과 헤어지면서, 사랑하니까 보낼 수밖에 없는 심정은 붙잡아 두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절규다. 물질을 버림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소유가 지닌 역설의 진리라면, 사랑도 떠나보냄으로써 참된 사랑을 얻을 수 있음을 처용은 의연하게 노래한다.

 천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던 신라의 사내 처용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뜻 깊은 아름다움은 식을 줄 모른다. 도교와 불교까지도 토속신앙으로 묶어내는 배경사상의 다양성으로,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정신력인 관용성으로, 주술적 무가에 담긴 사랑의 진정성으로,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우리의 서정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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