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어머니는 사랑의 집합명사다
⑤ 어머니는 사랑의 집합명사다
  • 이동희
  • 승인 2006.02.13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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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아소 님하,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작자 미상「사모곡(思母曲)」전문 

 하인스 워드-미국 프로풋볼 선수의 인간미 넘치는 성공 스토리가 미국을 넘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물결치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 씨의 사랑과 헌신이 워드를 미국 프로풋볼 슈퍼스타로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사연이 알려지면서 '우리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김씨가 자식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한국 여성들이 유전인자처럼 간직하고 있는 모성애의 전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모곡’이 고려 시대 이름 없는 어느 농민의 작품이라거나, 혹은 신라시대 어느 효녀의 작품이라는 설들이 있지만, 워드의 어머니와 같은 어머니를 둔 우리 자식들의 노래임은 분명하다. 우리 민족은 어머니에 대하여 남다른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머니를 부르기만 해도 목이 메고 눈물이 맺히는 사람은 많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무엇이기에 우리 민족은 어머니를 애틋함으로 연상하게 되는 것일까?

 구전되어 온 우리 고전설화에는 우리 어머니들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려장을 시키려 가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지만, 국법이 엄하니 어머니를 버려야 하는 불효를 거스를 방법이 없다. 아들은 어머니를 깊은 산속에 버려두고 얼마간의 식량을 남겨둔 채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아들아! 돌아갈 때 이 깊고 험한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네 지게에 업혀오면서 나뭇가지를 꺾어두었으니, 그 꺾어진 나뭇가지를 따라서 내려가면 길을 잃지 않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설화에서 고려장이 역사적 사실인지를 가리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죽음의 길에 들어서면서도, 자신을 버리는 아들을 보살피고 위해주려는 우리의 어머니들! 그 어머니들이 간직하고 있는 지극한 모성애를 가감 없이 접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이렇다.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느낌으로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뿐인 목숨을 버려서라도 자식을 지키려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다.

 ‘사모곡’에서는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호미와 낫’ ‘아버지의 사랑’을 대조하고 있다. ‘호미 : 낫 = 아버지 사랑 : 어머니 사랑’ 등식은 매우 친근한 일상적 소재들이다. 농사도구로서 그 예리함과 날카로움, 쓸모로 보아 ‘호미’가 어찌 ‘낫’과 비교될 수 있을까! 이 노래의 화자는 ‘호미<낫’이라는 부등식을 빌려서, ‘아버지 사랑<어머니사랑’이라는 부등식을 완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호미’가 농사도구로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예리함, (사랑의)지극함, (사랑의)거룩함으로 보아, 연장의 다른 쓰임 말고 굳이 ‘날[刃]’의 예리함(사랑만)을 대조하자고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사랑’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굄[愛]’의 절실성만을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인의 뒤에는 위대한 아버지가 아니라,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잠언이 이 21세기에도 유효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사랑의 비롯함이자 마무리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랑으로 닿을 수 있는 모든 의미와 행위의 집합체이다.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언어 중에서 사랑의 의미를 하나로 결집하라면 바로 ‘어머니’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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