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방’자 간판
⑤ ‘방’자 간판
  • 이원희
  • 승인 2006.02.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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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야릇한 현상이 일어나는 게 한둘이 아니다. ‘방’자 간판이눈에 띄게 많은 것도 그 가운데 한 현상이다. ‘방’은 삶의 거처로써 의식주를 이루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단순의미를 뛰어넘어 벼라별 장소에 ‘방’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금은방이니 복덕방이니 다방, 약방, 책방 등은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의 흔적이 되었다. ‘방’은 이제 고유의 의미를 넘어 ‘확대 가족’을 거느리고 있다. 안경방, 필방, 노래방, 머리방, 빨래방, 광고방, 비디오방 등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이제는 찜질방, 화투방, 놀이방, 아이방에다가 정보시대에 걸맞게 pc방, 인터넷 와글방이 가세하고 다이어트방에 이어 화장실을 응가방이라고 아예 간판을 바꿔단다. 연못을 덮는 연잎처럼, ‘방’자 간판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데는 어떤 문화적 의미가 숨쉬고 있는 걸까.

 조선시대에는 승정원 이하 모든 정부기관을 육방(六房)이라 했다. 육방관속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기생의 숙소인 기방은 율방(律房)이다. 기생은 연주와 가무, 문학적 언사로 사람의 마음을 조율하는 ‘말하는 꽃’(解語花)이 아니던가. 육방이나 율방의 경우에서 보듯이 방은 기능적 공간이다. 오늘날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방’자 간판의 유행은 방의 기능적 공간을 원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머리를 자르고 다듬는 공간이 머리방, 비디오 영화감상실은 비디오방이라 붙이는 경우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리적인 의미도 있을 법하다. 가스통 바슐라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방은 편안한 삶의 거소이자 우주의 중심이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 보면 ‘방’을 사용하는 데가 상업현장이라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한 푼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서는 사돈, 형제간에도 밑진 장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정서에 ‘방’은 어떤가. 온돌의 다스움, 한솥밥 정서, ‘한방 쓰는 처지’라는 말이 있듯 동질감과 공동의식 등이 떠오른다. 도틀어 말해 편안함을 준다. 긴장과 대립이 있을 수 없고 거래와 흥정은 더욱 설 자리가 없다. 가족공동체적 유대감으로 형성된 공생의 원리가 있을 뿐이다. 이윤창출의 상업공간에 ‘방’을 갖다붙이는 데는 이런 의미가 깔려 있지 않을까. 상업공간이지만 가족적 친밀성을 부각하고 ‘방’이 주는 여럿의 정서를 환기시켜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전략 말이다.

 롯데월드처럼 거대, 집체건물인 포스트모던한 건물은 경계가 없다. 놀이, 숙소, 상업, 금융의 공간이 문턱없이 섞여 있다. 문턱은 이곳과 저곳의 나눔이요 경계다. 대체로 ‘방’자 간판의 상업공간은 규모 면에서 작다. 그리고 문턱을 요구한다. 문턱에 의해 안방, 사랑방, 봉놋방 등이 기능적으로 구조화된 게 재래 우리 가옥이다. 이런 기능적 의미가 확대되어 오늘날의 ‘방’의 문화를 이룬다. 현재 확산되고 있는 ‘방’자 붙임현상은 편안함, 친근함, 전문성, 기능성 등 ‘방’의 정서와 어감이 주는 집단무의식을 자극하려는 심리적 의미가 깔려 있다.

<극작가.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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