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만전춘
⑧ 만전춘
  • 이동희
  • 승인 2006.03.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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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해도 지나침이 없는 사랑의 감성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정 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에 어느 잠이 오리요

 서창(西窓)을 열어하니 도화(桃花)ㅣ 발(發)하도다

 도화는 시름없이 소춘풍(笑春風)하나다, 소춘풍하나다.

 

 -작자 미상「만전춘(滿殿春)」1,2연 

 고려 시인은 ‘만전춘’에서 온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나, 짝사랑에 가슴 저린 결핍의 상황과는 대립적인 사랑의 환희를 노골적으로 토로한다. 시인은 남녀 간의 애정 행위를 통하여 누릴 수 있는 최고 열락(悅樂)의 경지를 구체화하면서, 그런 기쁨과 환희가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적나라한 사랑-애정 행각이 주는 충족감에 대하여 숨김없이 그 정감을 드러낸다.

 볼썽사납게 과다 노출된 포르노 사진이 주는 역겨움과는 사뭇 다르고, ‘카더라 방송’을 흉내 낸 ‘와이담-음담패설’이 주는 욕지기의 불쾌함과도 분명히 선을 그으며, 유쾌한 문예 미학적 성과를 지향한다. 고려의 사랑꾼은 오히려 포르노나 음담패설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간결한 이미지를 통해서 애정의 극치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 짧은 밤을 길게 샐 수만 있다면 ‘얼음 위에 댓잎 자리’마저도 능히 견뎌낼 수 있음을 고백한다.

 ‘얼음’이야 가장 차가운 물질의 대명사이지만, 얼음만큼은 아니어도 그 차가운 속성으로 ‘댓잎 자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물질이 아닌가? 염천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지절에 더위와 싸우는 이들이 가장 애호하는 물건이 바로 죽부인과 대나무자리가 아니던가. 제 아무리 호기를 부리는 염제(炎帝)라 할지라도 죽부인을 끼고, 대청마루에 대나무 자리를 깔고, 진경산수 그려진 합죽선(合竹扇)을 부치다 보면 더위는 이미 물러가 있지 않았던가. 대나무의 이질감, 얼음이 주는 냉혹성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날이 새는 것’이요, ‘정 둔 오늘 밤이 밝는 것’이라고 이 시인은 고백한다. 이런 사랑의 열망은 ‘얼어 죽을망정’에 더욱 적나라하게 집약되어 있다. 사랑하는 일은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의식을 엿보게 한다.

 이런 미의식은 2연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세련미를 더한다. ‘도화(桃花)가 소춘풍(笑春風)하는구나’에는 고려인들의 여유로운 은유적 미학기법이 오늘에 비해서도 결코 격이 떨어지거나 품질이 낮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천년이 지난 현대의 사랑 언사들-최근 개봉한 어느 영화의 제목이 ‘사랑하다 죽어버려라!’였다-과 비교해 보면 안다.

 ‘도화’는 익히 알고 있는 바처럼 성적 이미지를 지닌다.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는 것은 곧 사랑의 행위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암유한다. 임이 없는 외로운 밤일지라도 창문을 열고 만발한 도화를 바라만 보아도 (그 정을 두었던 밤을 생각하고는)소춘풍-봄바람에 배시시 웃음을 머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화는 시름없이 소춘풍하나다’이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복숭아꽃의 화려함, 그 분홍색 꽃무리 속에서 환호작약하는 몸살 나는 춘기(春氣), 서창을 열고 고즈넉하게 사랑의 환희를 반추하는 고려인은 ‘소춘풍하는구나! 소춘풍하는구나!’ 반복하며 사랑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 짓고 있다.

 화자에 대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 5연으로 된 이 노래가 여성 목소리로 일관하지만, 끝 연에서 ‘금수산 이불 아래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에서 남성의 목소리로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의 의미맥락, 표현수법, 어휘 구사로 보아 여성화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놀랍고 반가운 것이다. 사랑의 기쁨은 과장해도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랑의 진실을 말하지 않던가! 그런 화자-시인 바로 여인이었다는 발견은, 고려가요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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