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녹색문학, 녹색미학사회를 위하여
7. 녹색문학, 녹색미학사회를 위하여
  • 이원희
  • 승인 2006.03.09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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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다. 하늘은 푸르러 새들 비상하고 지상의 모든 수목은 생명을 터뜨려 초록의 잔치를 연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자연현상에 발 맞춰 사람도 생기가 돌아 생동한다. 계절이 순환하고 이에 맞춰 자연의 모든 존재가 함께 계절에 입을 맞추며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런데 이즈음에 우리에게는 반갑지 않는 손님이 찾아온다. 황사바람, 중국의 산업화가 쏟아놓은 결과다.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를 않다/ 햇빛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아롱졌던 길은/ 힘겹게 고개에 걸쳐져 있다/ 썩은 실개천에선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있는 현실을 시인은 증언한다. 그래서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메뚜기조차 뛰놀지 않는 고요한 들판, 죽음의 들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슬픈 현실 뒤에는 경제 성장, 기술 진보, 물질적 풍요 등을 지향하는 인간의 이념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계몽시대 이래 합리주의가 대두되면서 자연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뜯기고 할퀴어졌다. 자연을 지배와 정복, 착취와 사용가치의 대상으로만 여긴 문명진보의 이념 탓에 자연은 신음한다. 분명한 사실은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든다. 그래 급기야는 고대 희랍신화에 나오는 사티로스나 켄타우로스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할 수 있을까. 물고기처럼 등 굽은 사람, 외눈박이, 무뇌아, 연체동물처럼 뼈가 녹아 없어진 인간...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부를 수 있는 검은 미래다.


 녹색문학은 환경 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고발, 증언하며 현실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세우는 문학을 말한다. 생태문학, 생명문학, 환경문학 등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여 모든 생명들의 가치적 의미를 존중하고 인간도 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하자는 게 이들의 기본 전제다. 녹색문학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생물중심주의로,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이원적 사고에서 일원적 사고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적색문학에 반해, 녹색문학은 자연친화적이요 생태중심적인 문학이다. 시나 소설, 희곡작품에서 환경의 위기를 고발하고 생태계 파괴를 증언하는 문학은 9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한다. 하긴, 70년대 오태석의 <초분>이나 <비닐하우스>같은 희곡작품은 이미 환경파괴에 대해 경고한 바 있지만 본격적으로 문학계에 목소리를 내세운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비록 인식의 시간이 길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생태계 파괴와 환경 오염에 대해 문학적 대응 전략을 찾아 맞서야 한다. 자연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우리도 푸른 사람이 된다. 이것이 녹색미학사회다. 따라서 녹색미학사회는 앞으로 문학이 지향해야 할 푯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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